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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의 존엄성(2025년 10월(682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5-10-20 조회수 : 412 파 일 :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성이었던 고 이어령 선생은 타계하기 직전에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듯한 내용을 제목으로 삼은 것 같지만 막상 구해 읽어보니 울림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 있음, 즉 생명이 매우 중요한 도덕적ㆍ규범적 가치라는 점은 모두 인정한다. 그 때문에 생명 침해를 매우 무거운 규범 위반으로 여긴다. 생명권을 가장 중요한 인권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그렇지만 우리가 중요시하는 생명에는 전제가 붙어 있다. 바로 인간 존재의 생명이라는 전제가 그것이다.

    우리는 생명, 그중에서도 인간의 생명을 가장 중요한 규범적 가치로 여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 존재는 실천 이성을 지닌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자 칸트가 잘 표현했듯이 모든 인간 존재는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인간 존재를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그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해 보이는 이 명제가 우리 모두에게 받아들여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류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모든 인간 존재의 생명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일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구 사회의 제도적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로마제국 당시에는 모든 인간 존재가 로마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여성이나 아이, 노예의 생명은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이후 인류 역사가 발전하면서, 특히 계몽주의가 출현하면서 모든 인간 존재는 (형식적으로나마) 평등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을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로 취급하고자 한 근대 계몽주의의 기획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형식적으로만 평등한 사회적 약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모든 인간 존재의 생명이 평등하게 취급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필자가 볼 때 더 큰 문제는 생명 개념이 너무 좁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의 생명은 존엄한 생명이라는 규범적 주장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근대 계몽주의가 가진 내재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근대 계몽주의에서 출현한 여러 사상들은 ‘주체/객체 모델’을 바탕으로 삼고 있었다.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면서 양자를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로 설정한 것이다. 달리 말해 이 모델에서 객체는 주체의 수단, 즉 지배와 이용 대상이 된다. 이때 주체는 인간으로, 객체는 물건으로 설정된다. 여기서 문제는 물건 개념에 비인간적 생명체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령 인간이 아닌 동물은 단순한 객체로 전락한다. 같은 생명체인데도 동물은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더 나아가 인간 또는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와 구별되는 자연 역시 착취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재앙을 초래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기후 변화로 과연 우리 인류가 지속 가능한지, 호모 사피엔스라는 존재가 과연 앞으로도 지구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의문과 두려움이 제기된다. 오랜 진화의 결과로 도달한 생명의 별 지구가 현재 새로운 변화 또는 파멸의 계기를 맞고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오직 근시안으로만 이 문제에 접근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우려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현자와 지성인들이 이 같은 위기를 경고하였다. 그렇지만 윤리적 주장이 힘을 잃은 오늘날 이러한 주장은 자포자기적 넋두리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새로운 관점일 것이다.

    생명이 자본이라는 주장은 이에 유의미한 관점을 시사한다. 그간 정당한 가치, 특히 자본주의적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 생명에 정당한 가치와 가격을 매기자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문제를 자본주의적 처방으로 대처하는 것이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오늘날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서만 의미 있는 비인간적 생명의 규범적 가치를 되살리려면 일단 이에 정당한 가격을 매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이에 더해 우리 인간은 전체 생명체계의 주인이 아니라 이러한 체계의 일부분이라는 사고방식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연과 우리가 공존해야만 우리 역시 지속 가능하다는 당연하고 평범한 진리가 우리에게 강하게 내면화되어야 할 때다. 이에 따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 명제는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라고 말이다.

    <전 영남대학교 법학연구소 소장, 전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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