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1945년 8월 일제 패망 직후의 혼란한 정국에서 12월 30일 자유민주국가 설립에 진력하던 고하 송진우 선생이 흉탄에 쓰러졌다. 서거 80주기에 추모의 심정으로 자유권과 생존권에 대한 고하의 사상을 되새겨 본다.
고하는 일본 유학 시절에 조선유학생친목회의 총무를 맡았고, 회보「학지광」을 창간했다. 고하는 1915년(당시 25세) 메이지 법과 졸업 직전 “사상개혁론”을 기고했다. 고하는 서구 자유민권 사상을 선구적으로 수용, 설파했다. 고하는 맹목적인 공자 숭배와 중화사상에 연계된 유교를 시작으로 문벌 중심주의, 강제 결혼, 명리만 추구하는 허영 교육 등을 타파하자고 주창했다. 이러한 외침의 출발은 인간의 개체성을 존중하는 관점이다. 개인의 자율과 행복의 추구, 또한 개성과 개인 능력의 발현 및 자립을 가로막는 폐습을 과감하게 배격하자는 것이다. 혼인, 가정생활, 집 밖에서의 대인 관계와 같은 사적 영역에서부터 개인의 자유는 소중하며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사회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개인은 공동체에서 법적, 정치적으로 평등하며 억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하는 유교가 ‘전제 사상의 단서’이고, ‘평등 정치’ 실현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4세부터 한학에 입문하고 16세까지 성리학에 심취했던 고하가 자유주의 사상가로 전환한 것이었다.
고하는 민족 차원에서의 자유, 즉 조선 민족의 자결과 주권 확립을 위한 3.1운동을 기획하고 옥고를 치른 뒤 1921년부터 일제 패망까지 동아일보를 이끌며 언론인으로서 민족자강운동에 헌신하였다. 1925년 1월 동아일보에 4회 연속하여 “자유권과 생존권” 제하의 사설을 게재했다. 미국 독립혁명 당시 패트릭 헨리가 외친 것처럼‘죽음’으로써 ‘자유를 구하여 얻을 것’이라고 하면서 인격과 개성을 실현하는 자유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를 고양하려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존권이 전제되어야 한다. 생존권은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되고 개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실질적 평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유권과 생존권은 불가분이다. 생존권은 개인이 국가에 대해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고, 국가는 개인의 생존권을 확보할 의무가 있다.
고하는 외부의 강제가 부재하다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서 개인이 자신을 지배하며 잠재력을 실현한다는 적극적 의미에서 자유를 파악하였다. 이러한 자유권은 생존권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 생존권은 생활권적 기본권, 또는 사회권으로 점차 발전되어 왔다. 고하는 자본주의를 신봉했으나 그 병폐인 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방치하면 특수계급의 전횡으로부터 자유를 보호할 수 없다고 인식했다. 공공선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한 기회와 자원을 제공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해야 할 적극적 의무가 있다. 고하는 법적, 정치적 평등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평등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폭력을 동원하는 계급혁명으로 불평등을 철폐하자는 공산주의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자유를 훼손하지 않고 의회주의 방식으로 재분배와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열려있었다.
1925년 8월과 9월 동아일보에 연재된“세계 대세와 조선의 장래”의 말미에서 고하는 조선민족의 주의와 목표로서‘민족적 자유’ ‘사회적 생존권 보장’과 ‘세계적 평화’추구를 내세웠다. 1945년 9월 16일 고하 주도로 창당된 한국민주당 강령에는‘자주독립국가 완성’ ‘민주주의 정체 수립’과 ‘근로대중의 복리증진’이 포함되고, 8대 정책에는‘국민 기본생활 확보’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의 자유’ ‘교육 및 보건의 기회균등’ ‘주요 산업의 국영 또는 통제 관리’ ‘토지제도의 합리적 재편성’등이 들어 있다. 고하는 12월 22일 라디오 방송을 통한 정견 발표에서도 ‘생명, 재산과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함께 ‘독점자본 제재’와 ‘민중 생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주창했다. 고하는 일제 강점기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생명력과 우월성에 대한 신념을 견지하면서 경제 영역에서는 실질적 평등에 이바지하는 진보적인 경제정책 수단을 배제하지 않았다. 고하의 자유권과 생존권 사상은 오늘날에도 자유민주주의를 내실화하여 그 품격을 고양하기 위한 소중한 지침이 될 것이다. <전 서울대 교육부총장 겸 총장직무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