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아파서 지압을 받으러 다닌 적이 있었다. 고정적으로 가니까 자연스럽게 지압사와 친해졌다. “지압을 하면서 언제 슬프고 마음이 얼어붙었어요?” 슬픔은 마음의 정화고 소통의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나는 많이 배운다.

“먹고 살려고 지압을 배웠습니다. 어려서부터 청계천의 봉제 공장부터 시작해서 별별 노동을 다 해 봤습니다. 일을 가리지 않았죠. 제가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시각장애인들이 안마를 많이 했어요. 손님이 나를 보면서 ‘어? 보네?’라고 하는 소리를 종종 들었어요. 어떤 때는 불려가서 그 집 문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안 하겠다고 그냥 가래요. 그런 때는 슬프죠. 식구들하고 먹고 살아야 하는 데 말이예요. 또 어떤 집에서는 돈을 깎자는 겁니다. 자기 집에서 하니까 전기 값도 안 들었지 않느냐는 거죠. 다른 데는 돈을 펑펑 쓰면서 저 같은 지압사에게는 그렇게 인색한 겁니다.” 사람들은 남의 아픔이나 절박함에는 둔감하다. “기쁘고 따뜻할 때는요?” 내가 다시 물었다. “제가 계속 지압을 해 드리던 할머니가 계세요. 돌아가시기 전에 그동안 신세를 졌다고 하시면서 안마 침대를 사주셨어요. 고마웠죠. 지금 천국에 가 계실 거예요.”

백화점의 전기제품 판매부에서 일하는 영업사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진짜 부자들은 전혀 티가 나지 않아요. 그런데 졸부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라벨이 붙어 있어요. 자기들을 알아달라는 거죠. 그러다 막상 흥정이 벌어지면 턱없이 물건 값을 깎는 거예요. 텔레비전을 사서 쓰던 여성 고객이 물건에 흠이 있다고 시비를 건 적이 있어요. 공짜로 새 걸로 바꾸려는 트집이죠. 전화로 쌍욕부터 시작하면서 ‘너 머리 다 뜯어놓을 테니까 기다려’라고 했어요. 실제로 머리를 뜯긴 적도 있고 무릎을 꿇은 적도 있어요. 우리 같은 판매원들은 돈을 낸 그 사람들 스트레스 해소 대상인 거죠. 스무 명이 영업직으로 입사를 했는데 저를 포함해서 두명만 남았어요. 제 머리를 뜯은 고객을 제 단골손님으로 만들었어요. 이 영업직도 해 볼 만 해요.” 그녀는 강한 사람 같았다.

예전에 식모살이를 했던 한 할머니의 이런 서러운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인 여자가 자기 가족이 먹다 남은 밥을 한곳에 모아 내게 먹으라고 했어요. 숟가락으로 밥을 살살 풀어놨으면 몰랐을 텐데 밥그릇 모양으로 둥그렇게 뭉쳐진 밥이 켜켜이 쌓여 있는 걸 보니까 슬펐죠.” 그런 슬픔들은 어디서 위로를 얻을까. 그 할머니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식모살이도 하고 지하철역 청소도 하고 시장에서 노점상도 했어요. 지하철역 청소를 할 때 이제 그만 좀 닦으라고 밀대를 뺏던 역장님이 따뜻했어요. 노점상을 할 때 좀 쉬면서 하라고 의자를 권하던 액자공장 사장님도 좋았어요. 그때는 물건을 압수하는 단속반이 무서웠죠. 내 뒤에 있는 종묘집 주인이 단속반원 앞에서 같이 빌어줬어요. 참 고마웠어요. 제 외동딸이 병으로 죽었는데 딸이 살았을 때 내 굽은 어깨가 너무 말랐다고 울어주던 아이였어요. 그런 정들이 나를 살아오게 했죠.”

그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무엇이 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 나이 또래의 교장 출신이 이런 말을 한 게 내 수첩에 보관되어 있다. “아버지는 열일곱살에 평양에서 내려와 자수성가한 분인데 어려운 사람들을 늘 돕고 싶어하셨죠. 아들보다 신문 배달하는 아이의 운동화를 먼저 사주셨던 분이죠. 어머니는 찬밥 한 덩이 달라고 구걸하는 거지에게 늘 따뜻한 밥을 내주시던 분이었어요. 누구에게도 하대하지 않으셨어요. 제 부모님은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삶으로 보여주셨죠. 제가 교육자로 살아오면서 보면 훌륭한 사람들은 명문대학 출신이 아니라 공감력과 배려를 가진 사람들이었죠.”

사람의 인격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법률사무소를 처음 시작했을 때 기도했었다. 예수가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의 사무실에 왔을 때 박대하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게 돈을 주는 사람이 더 반가웠다. 나는 여러 개의 가면을 썼던 것 같다. 돈 많은 고객에게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사무실 직원에게는 무심했다. 보험을 들라고 온 사람에게는 냉랭했다. 음식점에 가면 옆에 서서 고기를 구워주는 종업원에게 팁을 주는 것에도 인색했다. 성경은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했는데 돈 쪽으로 신경이 갈 때가 많았다.

연탄재라는 시가 떠오른다. 다 탄 연탄재는 자기를 차지 말라고 한다. 네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적이 있었느냐고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