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18년간 반복 통과시킴으로써 세계의 여론에 호소해왔던 방식은 사실상 효과가 없었다. 그동안 유엔이 취한 가장 획기적 조치는 2013년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COI)를 설치하고, Michael Kirby 호주 대법관의 노력으로 북한 인권 위반 실태를 종합적으로 보고한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이 보고서는 결론 부분에서 북한의 인권위반 문제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다룰 문제라고 지적한 이래 ICC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2023년 3월 ICC에서 푸틴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비회원국인 러시아에는 ICC의 재판권이 미치지 않으나, 전쟁 상대국인 우크라이나는 로마 규정을 비준하기 전에 전쟁 사태에 관한 로마규정상의 ICC 재판권을 수락하는 통지를 했으므로 ICC 수사팀이 전쟁터에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그러나 푸틴은 ICC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체포영장 자체를 무시해버렸다. 누구도 그를 체포해서 헤이그로 인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ICC 영장은 시효가 없으므로 푸틴이 사망할 때까지 효력이 계속 발생한다. ICC 회원국은 푸틴이 자기 나라 영토에 들어오면 그를 체포해서 헤이그로 인도해야 할 조약상의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푸틴은 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여행제한이나 외교활동 제약 등 불편한 점이 많아진다. 결국 푸틴은 남아공에서 개최되는 BRICS 정상회담에 불참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영장 발부가 갖는 상징적 의미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물론 NGO와 UN 기구 등은 전쟁지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를 꾸준히 조사하여 기록하고 있다. 증거를 찾고 증언을 남겨 보존된 기록은 언젠가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큰 의미와 쓰임새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차 대전 당시 잔혹한 일을 많이 저질렀던 나치가 훗날 전쟁범죄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종전 후 완벽하지 않았을지언정 세계는 그들을 법정에 세워서 죗값을 치르게 했다. 러시아도 비슷한 궤적을 밟지 않을까. 작년에는 ICC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와 국방장관 그리고 하마스의 지도부를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스라엘은 회원국이 아니지만 2015년 팔레스타인이 로마규정을 비준하여 회원국이 되었고, 팔레스타인 영토(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ICC가 관할권이 있다고 결정됐으므로 영장 발부가 의미가 있다.

북한인권에 관심 있는 한국의 단체나 개인이 자주 ICC를 방문하고 있고, 온갖 투서나 고발장을 많이 보내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가 아닌 자가 제기한 고소나 고발은 부적법하므로 ICC 검찰부의 자동응답기는 각하한다는 대답을 계속 보내고 있다. 정부와 협력하여 좀더 준비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초대 검사는 2010년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묶어서 김정일을 단죄하겠다는 발표를 했었다.

그 후 알아보니 검사가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무책임하게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만한 발표를 한 것이었다. 남북한을 제대로 구별하지도 못하는 젊은 직원을 Korea Desk로 임명하고, 사전 준비 없이 남북한 정부에게 수사상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물론 우리 정부는 성실하게 제출했으나 북한으로부터는 전연 응답조차 없었다. 이 검사는 중국을 움직여 북한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기의 의도가 불가능함을 알게 되자 사건을 방치한 채 임기가 만료되었다.

제2대 검사는 친북성향이 농후한 어느 정치학 교수에게 불기소장 및 총회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다. 미리 입수해본 초안을 보니 한반도의 분단 경위에 관하여 북한이 선전하는 대로 베꼈을 뿐 아니라 NLL이 국경이라는 둥 법적으로 부정확한 표현이 가득했다. 검사와 담판을 짓는 등 현지 주재 한국대사의 결정적 역할로 최대한 수정한 후 총회에 보고하게 했다.

이러한 소동의 결과 북한 문제를 ICC가 다루는 데에는 다소 김이 샌 것도 사실이나 마침 우리가 ICC를 활용하여 북한인권 문제를 응징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김정은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범인 푸틴에게 제공한 무기, 탄약과 병력이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증거가 국제 언론의 보도를 참조하지 않더라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ICC 검사가 직권으로 고소하거나 아니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쟁의 피해자로서 직접 김정은을 ICC에 고발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범이 침략자 푸틴이라고 한다면 무기와 탄약을 공급한 김정은은 적어도 종범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c) 내지는 기여범 (제25조 제3항 d)이 되기에 충분하고, 사실관계의 입증에 따라서는 푸틴과 김정은이 전쟁범죄의 공동정범까지도 될 수 있다. 이때 김정은 개인은 물론 북한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제25조 제4항).

수집한 증거가 명백한 경우에는 ICC 검사를 설득하여 곧바로 김정은에 대한 영장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 검사를 설득하는 것은 물론, 한국이 차기 검사 후보를 세워 당선시키도록 준비해야 한다. 긴 안목으로 김정은에게 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민관이 손을 잡고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울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