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식이 국민통합의 초석

유영옥(行博ㆍ한국보훈학회장ㆍ경기대학교수)

   영국의 저명한 문명사학자 토인비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물질적 여건에 따라서라기보다는 그 민족이 가진 정신력에 좌우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세기 갖은 시련과 역경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토양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물질적 풍요를 일구어낼 수 있었다. 이는 당연히 우리 민족이 가진 강인한 정신력의 소산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현 상황은 어떠한가? 근대화의 성공으로 지금 우리 국민 모두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외형적으로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작 우리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계층ㆍ세대ㆍ지역간 갈등과 분열현상이 첨예화되고 있다.

   최근 정치사회적으로 소득의 양극화문제로 떠들썩하지만, 가치관의 양극화가 더욱 심각한 일이다. 그것은 국가공동체의식을 약화시키며,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근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찌 통일국가를 실현하며, 세계화시대를 이길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겠는가. 결코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흔히 사람들은 국가공동체 강화를 위해 민족의식의 강화를 내세운다.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우리 사회에서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글로벌시대인 현대는 '열린 민족 문화'의 시대라는 점에서 결코 민족주의만으로는 통합을 달성하기가 힘들며, 외부에서 보았을 땐 폐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 오늘날 국민통합을 강화시킬 수 있는 해답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보훈의식의 제고에 있다고 판단된다.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미국이 국가통합을 잘 이루고 있는 주된 원인이 바로 보훈의식의 제고에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은 잘 입증되고 있다. 물론 보훈에 있어서 금전적인 보상도 중요하지만, 상징을 통한 정신적 보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보훈수혜 대상자들 뿐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국민들로 하여금 보훈의식을 내면화하고, 애국심을 강화시키는 훌륭한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보훈 기본이념의 핵심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 봉사한 제대군인의 존엄성을 영원한 상징이 되게 하고 가장 명예로운 대상으로 국민이 존경하고 예우하도록 하는 데 있다. 제대군인은 곧 '살아 움직이는 상징'이기 때문에 국민통합을 위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국가보훈처에 해당하는 부서도 '제대군인부'라고 명명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미국은 각종 전쟁 참전 사상자 및 제대군인의 명예와 긍지를 지켜주기 위해 충분한 보상금 및 최상의 의료 서비스 등 범국가적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이러한 물질적ㆍ육체적 보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때 전쟁을 치른 북한과 베트남에서조차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끝까지 전시에 산화한 유골을 찾아 유가족 품에 안겨주는 장엄한 행사를 벌이지 않는가! 뉴욕 거리에서 군복 차림에 계급장을 단 상이용사들이 의기양양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시민들이 그들에게 엄숙한 경의를 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 않는가! 이 얼마나 효과적인 상징이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부자국가인 미국마저 물질적 보상에만 국한하지 않고, 이처럼 상징적 보상정책에 중점을 두고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이만한 국민통합 기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국의 보훈정책은 현역군인들의 사기진작은 물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킴으로써 국민적 연대의식과 그로인한 안보의식의 제고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9ㆍ11테러 직후에도 보았듯이, 위기 때마다 국민통합이 잘 이루어지고 국력이 배가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온 국민의 감동을 자아내는 보훈정책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국민들의 애국심에 의거한 가치관과 국가관의 정립은 국가의 유지와 존속에 기여함은 물론, 오늘날의 국가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천적이고 무한한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볼 때 우리 정부 역시 국민의 애국심 함양에 가장 효과적인 보훈의식 제고에 힘써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