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린 시절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면서 독배를 마셨다고 배웠지만, 이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도 아니고 내용이 틀린 것이기도 하다. ‘Dura lex sed lex’는 로마시대 민사법의 대원칙으로서 영어로 번역하면 ‘The law is hard, but law’이다. ‘법은 적용의 결과가 가혹하더라도 그대로 선언되고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Oxford Reference 참조). 이 원칙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악법’은 그 제정을 막아야 하고 일단 입법되었더라도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에 반하는 법규가 바로 ‘악법’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시되지 않으므로(헌법 제37조), ‘악법’을 결정하는 기준은 성문헌법 규정보다 넓은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악법’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이다. 법원은 적용할 법률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경우 해당 법률의 위헌심사를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결정에 따라 재판한다.

개인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를 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은 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지고 있어 재판에서 적용할 법률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하는 경우 법원 스스로 위헌 결정을 하고 그 적용을 거부한다.

우리 사회에는 비교적 근래에 조어된 ‘떼법’이라는 것이 암덩어리처럼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즉, 떼거리의 힘으로 실정법을 무시하고 이를 집행하는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법규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기관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누구든지 이 절차를 생략한 채 현행 법규의 적용과 집행을 거부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 앞의 평등(Equality before the law)에 있다. 이른바 ‘떼법’이 성행하면서 정당한 법이 설 자리를 잃어 우리의 일천한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 ‘떼법’의 시초는 조선총독부가 마지막으로 시행한 조선변호사시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1945년 8월 14일 민법과 형법 시험을 치르고 다음 날인 15일 정오 상법 시험이 끝난 상태에서 일본 천황이 연합군에 항복 선언을 했고, 그 이후 4과목 시험을 더 치러야 하나 중단되고 말았다. 응시자 수는 200여 명이었는데, 예년의 평균 최종합격자 수는 6명 정도였다. 응시자들은 의법회(懿法會) 또는 이법회(以法會)로 불리는 단체를 만들어 응시자 전원에게 변호사자격증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 재미있는 것은 명칭에 ‘아름다울 의(懿)’를 사용한 점이다.

이들은, 만일 시험을 끝까지 치렀더라면 응시자 전원이 합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조건 불성취의 책임을 응시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시험위원회 측은 당연히 의법회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거절하다가 결국은 연락이 되는 106명 전원에게 변호사시험 합격증서를 교부했다. 남북이 38선으로 갈라져 북쪽에 거주하는 다수의 응시자들에게는 연락이 두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의 항복 직후 우리나라에 근무하던 일본인 법조인들이 대거 자리를 비우고 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법조인 부족이 심각한 상태였다는 점도 이 사건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어쨌든 이렇게 합격증을 받아 든 응시자들이 나중에 변호사도 되고 판검사로도 임용되었는바,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법조인의 신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유럽이나 영미법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국민 개개인이 입법에 관심이 많아 치열하게 관여하는데, 이는 누구나 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 제정이나 개정이 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실정법이 국민의 법 감정과 부합한다. 이것이 바로 법치주의다. 반면에 ‘떼법’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조장한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은 실정법을 ‘떼법’으로 피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입법에 관심이 적다 보니 현실을 도외시한 법규가 양산되는 환경이 조성된다. ‘떼법’이 ‘떼법’을 확산시키는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