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에 수십억 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구 트위터), 넷플릭스 등의 거대 디지털 플랫폼은 맞춤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장착하고, 사용자 검색기록 등의 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을 통해 각 개인의 취향과 선호에 맞춘 콘텐트를 쉴 새 없이 추천하고 있다. 알고리즘 덕분에 이용자는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이 원하는 바를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편의성의 이면에는 기본권이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 인권의 기초가 되는 자유와 자율적 선택권이 그러하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온라인 환경을 슬며시 조종해서 이용자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넛지’인 셈이다.

그 결과 우리의 의식은 부지불식간 플랫폼에 지배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여 선택하는 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양도할 수 없는” 기본 권리인 자유 선택권을 부지불식간 기계에 양도해버리는 격이다. 이로써 인간은 자유롭게 판단하고 결정하며 이에 책임지는 인간 고유의 자율성을 상실하게 된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인 주체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 또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인권 침해 면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까지 위협하는 인스타그램 등의 SNS이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사진 동영상 기반 SNS 속 자랑과 과시는 자아와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의 자존감을 좀먹는 교묘한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남과 비교하는데 익숙한 우리나라의 경우 그 폐해는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데, 올해는 작년 대비 10% 더 늘었다. 우리나라의 결혼율 저하와 저출산 추세도 SNS가 광범위하게 확산한 2012년부터 더 심해졌다고 하니 그 폐해가 나라의 존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는 스마트폰과 SNS의 문제는 이제 각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교우 관계에 아주 예민한 나이인 청소년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혼자서만 끊기는 현실적으로 아주 힘들다.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혼자만 뒤처져 소외될까 불안해할 나이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SNS를 끊을 수 있는 환경을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조성해주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SNS 계정을 만들 수 있는 나이를 현재 만 14세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16세 이상으로 높이고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국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SNS가 순기능을 한다는 주장에 막혀 유보적 자세를 취하고 있기에는 이미 그 폐해가 너무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가 “개인의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 10조에 따라 청소년의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대응할 때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부터 학교 내에서 학생의 기본 권리를 명시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SNS로 인한 은밀한 인권 침해이다.

스마트폰이나 SNS의 폐해는 기존에 거론된 여러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의 인권 침해 문제임을 인정해야 한다. SNS 폐해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가장 시급한 사안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SNS를 포함한 모든 디지털 플랫폼에 매 순간 접속이 가능한 만능기기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나이 또한 제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스마트폰을 너무도 이른 나이에 접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주위에서 그렇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4, 5세 유아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준다고 한다.

그런데 어릴 때 책보다 영상 보기에 익숙해질 경우 초래되는 부작용은 너무도 크다. 영상은 남이 모든 의미와 정보를 만들어 나에게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영상이 주는 시각적 자극과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구태여 스스로 정보를 모아 다른 것과 연계 짓는 수고를 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스스로 정보와 의미를 구성하는 힘이 약해진다. 더 나쁜 것은 스마트폰이 제공해주는 즉각적인 감각적 만족에 길들어지면 아이들의 참을성이 부족해진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할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이용시간 제한, 앱 사용 현황 파악, 문자·통화·검색기록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자녀 스마트폰 통제 앱’도 이미 도입되었다. 이에 대해 교육·청소년 단체와 당사자인 10대는 인권과 사생활 침해라고 거세게 반발해왔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다양한 학습 자료 활용이나 디지털 도구 활용 능력 강화라는 순기능과 자유권을 들어 규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들의 압력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스마트폰 통제 앱이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의 침해라는 입장을 낸 바 있고, 올해 8월에는 학생의 등교 시 휴대폰 수거가 인권침해라며 이를 중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사생활의 비밀 유지와 자유의 보장보다 더 주목할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자유 선택권과 자율권, 존엄성과 생명권이 무너지고 있는 엄중한 현실이다. 스스로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청소년을 충분히 교육하고 이용에 대해 미리 합의하는 것이 규제보다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은 이미 유아기부터 스마트폰에 푹 빠진 경우가 많기에 이러한 방법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물론 현재 많은 초중등학교에서 교내 스마트폰 소지 및 사용을 교칙에 따라 금지하고 있지만, 이를 범국가적으로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동시에 시행하여 스마트폰 없는 학교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

국가적 행동과 함께 각 개인도 스마트폰과 SNS가 기본권을 근본부터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이를 스스로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관계 맺기를 통해 매 순간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렇기에 나의 선택을 과거의 축적에 불과한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이 대신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언제든지 내가 알고리즘에 종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기 나름의 가치관과 취향에 기반해 자율적으로 선택하겠다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수원대학교 대학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