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임기 3년의 제 10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취임했다. 위원장의 적격성을 놓고 논란이 많지만, 위원장의 견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인권위원회의 운영이다. 위원회는 대한민국 국가 인권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기구이기 때문에 지나친 이념적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만은 없다.

인권에 대한 견해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한 11명의 인권위원회를 구성하여 토론하고 합의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인권위원은 대통령이 위원장 포함 4명, 국회가 여야 2명씩 4명,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 또는 추천하여 결정된다. 다양한 이념을 가진 위원들이 모여 서로 다른 의견을 개진하고 숙론의 과정을 거쳐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는 국제인권규범의 기본 원칙에 기반하여 국내 인권을 증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국가행정기관이지만, 설립 근거가 세계인권선언 등 각종 국제인권조약에 있다. 따라서, 모든 논의와 결정은 보편적인 인권에 관점을 둔 국제인권규범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동안 다양한 사안에 대해 국제인권규범에 맞는 결정을 해왔고, 이를 인정받아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으로부터 2021년 A등급을 받았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국제사회의 기본 준칙을 준수하는 대표적인 기관으로 그 위상을 정립해 온 것이다.

예컨대, 위원회는 장애인차별금지, 이라크전쟁 반대, 대체복무제도 도입, 지방자치단체 인권조례 관한 권고처럼 우리 사회에서 견해가 상충하는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국제인권규범을 바탕으로 인권의 지향점을 지혜롭게 제시해 왔다. 인권위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조율이 순조롭게 이뤄져 가능했던 결과다.

하지만, 최근 위원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매우 우려스럽다. 지난 5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제출한 보고서에 따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

최근 상임위원 중 한 명은 유엔의 자유권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이 실적을 쌓기 위해 특정 주제와 관련하여 경쟁적으로 권고를 하니 유엔 권고를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는 국제인권규범을 이행하는 국제인권기구를 폄하하는 심각한 발언이다.

사형제도에 대한 발언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사형제가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국제사회의 사형제 폐지 원칙에 동의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사형제도 폐지를 권고하는 유엔 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에 공감한다는 답변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데 한 상임위원은 “개전의 가능성이 없으면 사형이 선고돼야 한다”라고 말했으며, 더 나아가 “사형선고 뿐 아니라, 사형이 집행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발언했다. 기존에도 위원들 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던 적은 많지만, 이 정도로 국제인권 기준에 반하는 인권위원의 생각과 주장은 없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위원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조차 비인권적인 발언과 행동을 보인다는 점이다. 올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한 상임위원은 국가인권위원장을 향해 ”망발입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러한 위원장과 상임위원의 불편한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을 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상급자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아 퇴장을 당하면서도 비인권적인 언사를 지속하는 모습은 과연 우리가 오랫동안 자랑스럽게 지켜오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온 인권위원회인지에 대한 의심을 자아냈다.

국제인권규범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세계인권선언문의 1조에는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인권이 법으로 발전하며 개인의 권리에 더욱 초점을 맞춰 왔지만, 그 근본정신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개인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 있다.

국민의 인권 사안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인권위원은 인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물론이지만,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인격과 양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인권위원이 국제인권규범을 잘 이해하고 준수하여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인권선언문을 기반으로 하는 유엔의 국제인권규범은 전 세계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참여하는 국제질서이다. 국제인권규범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선진국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이제 인권 분야에서도 더 존경받는 품격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