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가까워지자 당국은 바짝 긴장을 하였다. 이 전의 경험을 미루어 보아 군은 전면에서 뒤로 물리고 경찰력 위주로 사태에 대처하려 하였다. 그 사이 경찰력은 1만 명이 넘는 규모로 확장되어 있었다. 당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 이외에도 당시의 일반적인 민심의 동향은 당국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군의 지원도 계획에 있었다. 당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뿐만 아니었다. 당일 이전의 사전적인 조치도 철저하게 하였다. 말하자면 행사 당일에 있을 수 있는 사태에 사후적으로 대처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전에 ”소요“가 있음직한 날짜들에 집회 불허를 통보하거나 이미 허가한 집회도 금지한다는 통보를 하였다. 있을 수 있는 사태에 경찰이 주로 대비하는 것이었지만 군도 일부 여기에 참여하였다. 각지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에서 각기 보병 1개 중대, 그리고 특별히 기병, 포병 1개 소대, 동경 근위병 1 개 중대로 모두 6천여 명 이외에도 해군 총대 1개 대대 700여 명도 참여하기로 되었다.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들 중에는 이 글이 1987년에 서울에서 일어난 이른바 ”6월 항쟁“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앞의 글은 지금으로부터 98년 전 1926년 6월 10일 순종 황제의 장례식 날 일어난 이른바 ”6.10 만세 운동“에 관한 것이다. 이 운동보다 60여 년이 지난 후, 1987년 6월 10일 수십만의 시민들이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화이트 칼라 직장인, 노동자, 대학생...등의 신분과 직업에 관계없이 한목소리로, 이념이나 정파의 차이 혹은 직업적인 이해관계를 모두 넘어 권위주의 정권에 대하여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군사정권은 이들의 요구에 현명하게 뒤로 물러섰고 6.29 선언을 통하여 한국의 민주화는 큰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보다 60년 전 조선 공산당의 권오설과 천도교의 박래원이 중심으로 순종의 장례식이 예정된 그해 6월 10일에 3.1 운동과 같은 대규모 시위운동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우리 독립운동사에 드물게 이념의 차이를 넘어 민족을 아우르는 항일 독립 운동의 예로서 특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들의 거사는 사전에 ”격고문“이 실린 인쇄물이 발각되어 무산되었다. 그러나 당일 장례 행사는 도처에서 일어나는 만세로 다시 한 번 크게 장식이 되었다. 중앙, 중동, 휘문중학교, 연희 전문 ... 등 학생들의 자발적인 시위들이었다. 식민 당국은 그때 깨달았어야 한다. 문화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열망은 힘과 억지 명분으로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독립운동사에 드물게 이념의 차이를 넘어 민족을 아우르는 항일 독립 운동의 예로서 특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러운 일은 북한에서는 민족의 귀중한 역사적인 사건이 전혀 없었던 일이나 마찬가지로 무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관한 연구나 기념은 말할 것도 없고 공식 역사에 언급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북한 정권 수립 초기에는 6.10 만세 사건을 공식적으로 기념하기도 하였다고 들었다. 그러던 것이 특히 남로당 박헌영 계 숙청이후 북한의 공식 역사관이 새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즉, 3.1 운동을 기점으로 민족주의 운동은 민족 개량주의로 가고 사회주의 운동은 종파주의가 되었는데, 김일성이 1926년 타도 제국주의 동맹 창설로 항일 운동을 새롭게 계승하였기 때문에 여타의 사건들은 역사에 남을 것이 못 된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관계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앞으로 2년 남은 6.10 만세 사건의 100 주년을 계기로 남북 간에 이런 문제에 관하여서도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전 주 영국‧일본 대사, 전 대통령실 국가 안보 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