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밤, 아파트 주차장에서 옆 차를 살짝 긁었습니다. 평소 운전에 자신이 있던 터라 기분이 나쁘기도 했고, 당장 집사람에게 변명할 생각에 난감했습니다. 집사람에게는 밤 시간대라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밤눈이 어두워진 탓이라고 둘러댔습니다. 특히, 차창에 ‘선팅’이라고 부르는 필름이 너무 진해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요즘은 대낮에도 차 안에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선팅을 한 차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차창에 짙은 색의 필름을 붙였다가 벌금을 낸 적이 있습니다. 경찰에게 차량의 뒷자리는 몰라도 운전석과 조수석은 훤히 들여다보여야 한다고 일장 훈시를 들었습니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짙은 선팅을 한 차를 본 일이 없습니다. 옆 차 운전자를 보면서 서로 눈인사도 나누고 사과도 하면 길거리 분위기가 한층 밝아질 텐데요. 우리는 옆 차가 왜 그러는지 파악할 수 없으니 수시로 경적을 울려대고, 때에 따라서는 시비가 붙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프라이버시에 무척 민감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일이 ‘나는 상대방을 볼 수 있지만 상대방은 나를 볼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한두 다리만 건너면 서로 연결될 만큼 ‘가까운’ 사회입니다. 그래서 타인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개인의 권리를 공공의 이익에 우선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자동차 창문에 짙은 선팅을 하는 것이 그 예가 아닐까요?

요즘 길거리에서 휴대폰에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스마트폰에 푹 빠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좀비 같다고 해서 ‘스몸비(Smombie)족’ 이라고 부른다는데요. 주의하지 않으면 맞은편 사람과 부딪히기 쉽고, 스마트폰 사용에 정신이 팔려 무단 횡단을 하다 교통사고가 나기도 한답니다. 사고 위험성도 심각한 문제지만, 타인과의 교감과 소통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화창한 봄날, 경치도 보고 새소리도 들으면 마음이 한결 평화로워질 텐데 말입니다. 저는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 것을 좋아합니다. 잠시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창밖에 도도히 흐르는 한강을 보면 왠지 마음이 넓어지는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나라에서는 보행 중 휴대폰을 보면 처벌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걸으며 휴대폰을 보는 것은 자기의 권리에 해당할지 모르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어 되도록 삼가야 합니다. 이 역시 개인의 권리와 타인의 불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지 못해 생기는 일이라고 봅니다.

광화문 근처를 다니다 보면 시위 현장을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그 일대에 극심한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시위대가 운전자들이 겪는 불편을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듭니다. 시위가 공공선이 아닌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권리를 침해하더라도 개인의 권리 행사에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교육을 철저하게 합니다. 남에게 끼치는 폐를 의미하는 ‘메이와쿠(迷惑)’는 일본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데요. 물론 극단으로 가면 또 다른 갈등의 요인이 되겠습니다만,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나만의 공간 확보’라는 메이와쿠 문화는 어느 정도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든지,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공공예절의 실종은 자기 권리만을 생각하고 남의 불편은 무시하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의무교육의 첫째 목표가 건전한 시민을 만드는 것일진대, 남의 불편을 살피는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처벌이 능사는 아닙니다만 때에 따라서는 적절한 훈계도 필요해 보입니다. 개인의 권리는 아무리 보호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타인의 권리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