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6일 북한의 김정은은 남북관계가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고 말하며, 더 이상 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정은은 “흡수통일을 꿈꾸면서” 북한과의 “전면 대결” 정책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족속들”과 통일의 길을 함께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말한 흡수통일의 근거는 바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다. 김정은은 역대 남한의 지도자들이 제시한 통일정책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의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이었으며, 지금까지 남한에서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었지만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의 통일 기조는 추호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고 강조하였다. 김정은은 이러한 입장이 “민주를 표방하는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말하였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지향해 왔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일찍이 장면 정부는 “국민의 자유의사 표시”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통일의 과정에서 “시대의 진운인 자유화 물결”이 넘쳐흘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전두환 정부는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을 제시하며, “통일은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거하여 겨레 전체의 자유의사가 반영되는 민주적 절차와 평화적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 방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다. 이 방안의 원조는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다. 여기서 노태우 대통령은 “통일된 우리의 조국은 각자의 자유와 인권과 행복이 보장되는 민주국가”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울러 “민족성원 모두의 참여와 기회균등이 보장되고, 다양한 주의, 주장이 자유로이 표현되고 대변되는 민주공화체제”가 통일 한국의 “유일한 선택”이라고 언급하였다.

1994년 김영삼 정부가 기존 통일 방안을 수정하여 발표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는 자유민주주의 기조가 더욱 체계적으로 담겨있다. 이 통일 방안은 자유 없는 민주가 있을 수 없고, 민주 없이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도 있을 수 없다”인 인식에 기초하여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통일의 기본 철학으로 삼았다. 또한 통일의 원칙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제시하며, 통일 이후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나아가 통일 미래상으로 자유, 복지, 인간존엄성을 내세웠다. 이후 김대중 정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부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인정하고 계승해 왔다.

우리 헌법과 통일담론에 면면히 이어온 자유와 인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북한이 흡수통일을 우려한다고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 된다거나,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통일은 우리의 민족적·국가적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의 원칙을 후퇴시킬 수는 없다.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삶을 원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발표된 지 30년이 되었다. 대내외 환경이 많이 변화한 것을 고려할 때, 통일방안의 수정·보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존 통일방안 및 통일담론에 담겨있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대한 염원은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랜 기간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통일 이후에도 그 자유와 인권을 누려야 한다. 통일은 우리에게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본 연맹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