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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의 뿌리 (2022년 6월 (642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6-15 조회수 : 2 파 일 :



    “조선 반도를 옆으로 가로지르는 약 3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분계선은 75개의 작은 하천과 12개의 강을 남북으로 가르고, 181개의 작은 도로, 104개의 마을 도로, 15개의 도(道)급 도로, 8개의 대형 도로 및 남북을 잇는 6개의 철도를 관통한다.” 이것이 38선입니다.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후 가혹한 식민지 통치하에서도 국내외에서 어려운 저항을 이어온 나라가 마침내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강대국들이 공모해서 자기들의 편의대로 약소국을 분할한 일은 역사에서 가끔은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공동체를 현지의 구체적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직선으로 잘라버린 무도한 처사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1차 대전 이후 구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러시아의 묵인 하에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하여 차지한 악명 높은 사이크스-피코 밀약(Sykes-Picot Agreement)도 일직선으로 나눈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전의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은 별 어려움이 없이 이렇게 무도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한 경위와 책임이, 적어도 상당한 정도로 우리에게 있었다는 말을 한다면 모두가 분노하고 단죄까지 하리라 여깁니다.

     

     

     

     

     

     

     

    가끔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일본의 항복으로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우리는 전승국이었는가, 패전국이었는가? 대부분 대답은 전자, 전승국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힘의 우열에 있어서 강대국 일본에 비할 수 없는 처지에도 우리는 독립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투쟁이, 안중근 의사의 ‘동양 평화론’아니 ‘기미 독립 선언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명분에 있어서도 일본의 양식 있는 분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차원 높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패전국 대우를 받아 분단과 함께 점령 통치를 받아야 했을까요. 잠시 프랑스를 살펴봅시다. 프랑스는 개전 초기 독일에게 항복하고 나찌 독일에 협력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전쟁이 끝났을 때 전승국의 대열에 섰습니다. 마술이 아닙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패전을 받아들이지 않고 연합국 측에 서서 항전을 이어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드골 장군의 지휘 하에, 이념, 종교, 지방...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단결해서 연합국의 편에 섰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하지 못한 일이지요. “협동이 어려웠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에도 여러 집단 사이에서 연합은 기껏해야 2년 정도 유지되었을 뿐…서로 자파의 지배 체제를 확립하려고 하는 바람에 협동 체제가 빈번히 와해되고 말았다.” 김규식 선생의 회한입니다.

    2차 대전은 우리가 빼앗긴 국권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4분 5열의 형편에 연합국 측이 인정할만한 통합된 실체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영웅적인 투쟁도 각기 개별적인 노력에 그쳤습니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입니다. 강대국 탓에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돌아볼 일은 없겠습니까? <가천대학교 석좌교수, 전 경희대 대학원장, 전 우석대학교 총장, 전 대통령실 국가 안보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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