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뮤니티
  • 관련 사이트
  • 간/행/물

    Introduction

    • 국제인권보
    • 인권보 칼럼
    죄 없는 죄의식(2022년 5월 (641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5-16 조회수 : 3 파 일 :



     내가 윤동주의 시를 처음 만난 것은 철없던 질풍노도(疾風怒濤) 시절, 검정색 교복에 검정색 교모(校帽)를 푹 눌러쓰고 다니던 중학생 때, 누런 갱지에 엉성하게 인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낡은 시집에서였다. 그 헐어빠진 시집 첫 장에서는 연희전문의 검정색 교복에 검정색 학사모를 푹 눌러쓴 슬픈 얼굴의 흑백사진 한 장이 낯선 시어(詩語)들 속으로 나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일부)
    , 세상에 이런 기막힌 시가 있었던가? 어린 시절, 서울 후암동 남산 어귀의 우리 집에는 깊이가 서른 자()도 넘는 큰 우물이 있었다. 나는 마치 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종종 우물 속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너무 깊어서인지 어떤 사나이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도 바람도 가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보름께면 가끔씩 우물 속에 흐르는 달빛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아니, 우물 속으로 가라앉는 보름달을.
    시인은 그렇게 우물처럼 좁은 세계 속에 갇힌 자신을 성찰했던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의 하늘을, 모질게 휘몰아치는 역사의 바람을, 그리고 그 속에 희망처럼 낮게 흐르는 달빛을 보려고 애썼던가? <자화상>이 민족과 시대의 고뇌 앞에서 겪는 자아(自我)의 갈등이요 애증(愛憎)의 토로임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지만, 그때 이미 나는 시인의 정신적 포로가 되어가고 있었던가보다.
    슬픈 운명처럼 정갈한 시혼(詩魂)을 끌어안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서시일부)했던 순백(純白)의 영혼,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울부짖음과 무기력한 실존 사이의 틈을 부끄러워하며 그 죄 없는 죄의식을 하늘과 바람과 별들에게 고백했던 정신의 결벽증, 칼을 품고 독립투쟁에 가담한 적도, 일제를 꾸짖는 격문 한 줄 지은 적도 없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경(日警)에 체포된 조선청년, 일제의 감옥에서 정체 모를 생체실험용 주사를 맞고 스물여덟 해의 삶을 짤막하게 거둔 애잔한 시인.
    독립군이 아니었지만 그의 역사의식은 이 땅의 민초(民草)들과 겨레의 아픔을 함께 앓았고, 철학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시들은 내면의 깊은 성찰을 헤집었다. 종교인이 아니었어도 그의 독백은 경건한 영성(靈性)을 그윽이 품었으며, 혁명가가 아니었어도 그는 시대처럼 올 아침’(‘쉽게 씌어진 시일부)나팔소리 들려올 새벽’(‘새벽이 올 때까지일부)을 은밀히 꿈꾸고 있었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참회록일부) 녹슨 거울도 저 우물처럼, 시대와 민족 앞에서 자신을 반추(反芻)하는 매개물이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가며 죄 없는 죄의식을 씻고 또 씻어내는 참회의 제기(祭器)였던가? 스물넷 나이의 청년이 어찌 이다지도 깊숙이 영혼의 내면을 파고들 수 있었을까? 그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였던 나는 별로 큰 죄를 지은 기억도 없이 시인을 흉내 내며 짐짓 참회의 성례전(聖禮典)을 스스로 펼쳐보려고 애썼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뒤, 연변 용정의 대성중학교 2층 복도에서 문득 마주친 시인의 초상화는 실향민인 나의 눈에 미지(未知)의 고향 같은 감동을 휘몰고 다가왔다. 따스하고 나른한 향수(鄕愁)가 아닌, 충격과 전율의 감동을퀭한 눈망울로 감옥의 철창 밖을 내다보는 시인의 초상화를 대하는 순간, , 숨 막히는 전율이 내 온몸을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야윈 두 손으로 철창을 부여잡은 시인은 그 시리도록 영롱한 영혼의 입술을 열어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또 다른 고향일부)고 독백하는 듯 했다. 막 터지려는 눈물샘을 차마 일행들 앞에 보일 수 없었던 나는 잠시 건물 밖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시인은 이제 누런 갱지의 낡은 시집이 아닌, 내 낡아버린 육신의 어느 깊은 곳, 옛집의 우물처럼 저 아득한 자리에서 죄 없는 죄의식을 슬픔처럼 토해내고 있다. 아니, 숱한 죄과를 짊어지고서도 아무 죄의식 없이 지도자 행세를 하려드는 저 뻔뻔한 얼굴들의 죄 많은 무죄의식이 우리를 더 큰 슬픔으로 몰아넣고 있다.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전 국회공직자윤리위원장, 전 예술의 전당 이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이화학당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인권위원장>

     

    이전글 : 가정의 달, 장애아동이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2022년 5월 (641호))
    다음글 : 분단의 뿌리 (2022년 6월 (642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