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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에 대한 단상(2022년 5월 (641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5-16 조회수 : 2 파 일 :



     다소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인권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날마다 뉴스를 틀면 모든 주제는 인권과 정의로 통한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자신의 인권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으며, 자신은 얼마나 인권을 존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가끔씩 생긴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권이라는 단어를 마음껏 사용하게 된 것은 오랜 인류역사에서 알고 보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의 전체 역사 중에서 선사시대를 제외한 역사시대만 놓고 보더라도 대략 5천년 역사 중에서 개개인의 인권을 자유롭게 공공연히 논할 수 있었던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이니 불과 이백년 남짓이다. 이러한 서구에 비하여 법치주의의 출발이 뒤쳐진 우리의 경우 인권의 역사는 그보다도 더 일천하다. 물론 전제주의 내지 세습신분으로 이어온 서구의 중세 내지 우리의 조선시대에도 인권 개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계몽 사상가들을 살펴보자면 서구의 경우 프랑스 혁명에 훨씬 앞서 천부인권을 논하였고 이러한 철학적 바탕이 결국 현대적 의미의 인권개념의 모태가 되었으며, 또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민심이 천심이라는 아주 원시적 형태의 인권 개념의 태동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완전한 의미의 인권, 즉 통치자로부터 베풂을 받는 수혜자로서의 수동적인 지위가 아닌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개개인의 인권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근현대 법치주의와 확립과 함께 민주사회의 출발에서 비롯한다.

    이처럼 본격적인 인권의 역사는 전체 인류 역사에 비하여 매우 단기간이라 하더라도 어느덧 21세기에 접어든 요즈음 우리는 모든 주제가 궁극적으로 인권으로 통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인권개념이 일상이 된 사회 안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인권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 여부를 스스로 확인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인권을 측정하는 저울이나 온도계가 있으면 매우 좋으련만 과연 우리의 자유나 평등이 얼마나 잘 실현되고 있는지 측정하기 어렵다.

    인권의 구현을 측정한다는 표현을 굳이 쓰자면,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황 즉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그동안 인권 구현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확인하는 것 같다. 결국 자신의 인권이 그 누군가의 또 다른 인권과 부딪히게 되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의 기본적 인권도 근본적으로 침해되지 않는 조화로운 상황이 가능하다면, 그 사회의 인권은 제대로 구현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가 상호 저촉되는 접점에서 올바른 인권 구현이 이루어지려면, 사회구성원 각자의 자신에 대한 판단기준과 타인에 대한 판단기준이 적어도 사회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오차범위 내에서는 일치하여야 한다. 이는 부단한 자기반성과 연마를 필요로 하는 문제이다.

    흔히들 타인의 암이 나 자신의 감기보다 못한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고도 한다. 따지고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 자신도 유사한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으니 굳이 어느 누구를 비난하기에 앞서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큰 것 같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보다 성숙된 자아와 현실 개념을 가지고 이웃과 사회 전체의 관계 정립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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