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붕괴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서방 국가들은 카불에서 자국민을 철수시켰고 대사관들은 완전히 폐쇄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한국인은 모두 귀국했다. 그리고 우리 정부에 협력적이었던 아프카니스탄 390명도 구출되어 특별기여자의 자격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대다수 남겨진 사람들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있다.

누구보다 탈레반 점령 후 아프카니스탄의 여성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거리 광고판 속 여성 얼굴이 지워지거나 검은 페인트 등으로 덧칠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외신을 통해 송출되었다. 이슬람 여성의 의복인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한 여성이 탈레반의 총격으로 사망한 소식도 전해졌다. 충격적인 것은 이 날이 탈레반이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언론을 통해 세계를 향해 약속한 날이었다. 연일 탈레반에게 고문당하고 살해되는 여성들의 사례가 연일 외신을 통해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아프칸 정부시절, 아프칸 장애인단체들이 미국의 시민사회활동과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탈레반 정권에 의해 위험 상황에 놓였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시아 재단(Asia Foundation)에 의하면 아프카니스탄의 성인 80% 정도가 장애인으로 추정된다. 이는 40여년이 넘는 전쟁에 의한 결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여년 간의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지원 속에서도 아프칸 정부의 장애인을 위한 노력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의 보고서에 의하면 아프칸 장애소녀의 80% 이상은 전혀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카니스탄 정부는 2012년도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아프카니스탄 정부는 첫 번째 국가보고서조차 제출하지 않았다. 한 소식통은 탈레반은 장애가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두 번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부모와 가족이 없는 장애아동들을 보호하고 돌보고 있던 활동가들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탈레반은 아프간 장애인들을 자살 폭탄 테러범으로 모집하기도 했다. 2004년에서 2007년 사이에 카불에서 발생한 폭격기 유해의 부검 결과, 이들 중 80% 이상이 장애가 있거나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인들이었다. 일자리를 얻기 어려웠던 아프칸 장애인들이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자살 폭탄 테러범이 되기로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해외 원조로 장애인들의 복지와 자립을 돕던 현지의 장애인 리더들이 그 어느 때보다 생존에 위협을 겪고 있다. 어떤 경로이든 이들이 도움을 받지 않으면 장애인들은 점점 더 취약한 상황이 될 것이다. 이제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아프카니스탄에 남겨진 여성과 장애인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개입으로 탈레반이 그들의 생존과 인권을 보호할 것을 약속받아야 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국제전문위원회 위원, 한국국제개발협력(KOICA) 자문위원, (사)장애인법연구회 고문, (사)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