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인류 역사를 지배 해 온 두 원칙, 약육강식과 부국강병은 근대국가들의 공통적 절대명제였다고 말해도 좋을 성 싶다. 근대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또 다른 특징 네 가지가 더 있다. 첫째 산업혁명의 결과로 생겨난 대기업, 둘째 화약무기의 보급과 함께 성장한 군대, 셋째 국가체제와 더불어 성장한 관료조직, 넷째 의무교육제도와 함께 발달한 근대식 학교제도 등이다. 근대국가들은 예외 없이 이 네 개의 조직을 토대삼아 운영되면서 약육강식 시대에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경쟁에 몰두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네 조직들의 구성 원리와 운영방식은 판에 박아 낸 듯이 서로 닮아 있다. 바로 20세기의 집단적 하향식 획일주의 문화의 특징들을 지녔다는 점이다. 특히 학교의 경우 조직의 구성 원칙과 학년구분, 학과목 간 전공분야 간 분업주의 장벽 쌓기 등 군대나 관료 조직의 운영원칙과 꼭 같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니까 20세기까지의 학교는 노동자 병사 관료후보자의 양성과 배치를 위한 국민 예비 훈련기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20세기 교육의 집단적 하향식 획일주의 문화의 환경 속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존엄과 인권에 대한 관념이 싹 트거나 자랄 수 있는 바탕이 애초부터 자리 잡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20세기가 저물어 갈 즈음 이러한 약육강식 집단주의 질서의 원칙이 인류사의 한 귀퉁이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 했다. 대표적인예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의 패퇴와 월남전에서의 미국의 패배다. 더 이상 20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약육강식원칙이 역사를 지배하는 시대가 지속될 수 없다는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초강대국이 초약소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역사적 현실의 의미를 간파하지 못한 채 여전히 20세기 강대국 중심 논리로 국제관계를 밀어붙이던 미국이 21세기 벽두(2001)에 만난 것이 9.11사태다. 국가도 아닌 일개 테러조직에게 초강대국이 당한 것이다.

이제까지 무시 간과해왔던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존재들 하고도 소통 공존하려고 노력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21세기 새로운 문명사적 환경에 인류가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역사의 신호로 해석할 만한 의미가 내포된 사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1세기 새로운 문명에 적응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수립 못지않게 화급하고 중요한, 그리고 지난한 과제는 바로 학교문화의 총체적혁신이다. 집단주의 획일주의 하향식 권위주의에 종속되도록 훈련하던 학교교육의 원칙들 모두를 해체 재조립 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 한 것이 오늘의 학교문화이다. 유치원 초등학교에서부터 아동 학생 개개인의 존엄과 인권이 존중 받는 교육환경으로의 전환과 개혁이 절실하고 화급한 과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지난한 과제가 아닐 수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학교문화를 지배해 온 기득권세력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미 1백 년 전에 영국의 실험학교 ‘썸머힐’ 에서는 학교의 규칙을 정하는 학교총회에서 모든 학생들과 교장을 포함한 교직원 전원이 각자 한 표씩의 동등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학교를 운영해 왔다. 아동 청소년의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라야만 21세기를 살아갈 인재들이 자라는 학교일 것이다. 최근 들어 급속하게 활기를 띄기 시작한 대안교육운동에 희망을 걸어본다. <박물관교육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