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감염병 팬데믹으로 국민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진 가운데에도 크고 작은 사안마다 합리적인 선택보다는 진영논리가 우선하는 정치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사회갈등의 유형 중 보수와 진보 간 이념갈등을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진영논리에 매몰된 이념갈등의 심각성이 계층갈등, 노사갈등, 세대갈등, 또는 지역갈등보다 더 크다고 본 것이다. 진영논리는 특정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폐쇄적인 신념체계이자 가치체계이며 열성적인 신봉자들은 이와 모순되는 분명한 증거가 나오더라도 이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가 발전을 거듭하게 된 것은 학술적 이론이 검증을 통하여 반박될 수 있으며, 개방적 과정을 통하여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폐쇄적인 진영논리간 대립이 격화될 경우 타협과 협상의 여지가 없으므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진영논리의 강화에는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매체도 한몫을 담당한다. 정보를 획득하는 수단으로서 신문과 TV와 같은 전통매체의 역할은 점차 약화하고 휴대가 간편한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인터넷 포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포털 이외에도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팟캐스트와 같은 다양한 매체가 대두하였다. 그런데 카카오톡과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검증되지 않은 사실(소위 가짜뉴스)이 순식간에 확산되어 사실이 과장 · 축소 · 왜곡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진영논리의 신봉자들은 신뢰도가 낮은 인터넷 매체의 정보를 맹목적으로 확신하고 이를 나르는 데 동참하여 진영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상과 타협을 통하여 갈등을 해결하여야 할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은 유권자들보다는 소속 정파의 입장을 따르므로 진영간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진영간 갈등이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이같이 전통적인 대의 민주주의 체제로는 정치적 갈등의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의민주제의 대안적 모델로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강조하는 참여민주주의와 더불어 숙의민주주의가 대두하였다. 참여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의 직접 참여를 확대하여 갈등 사안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참여민주주의가 제도화된 형태로는 공청회, 주민자문위원회, 주민투표, 주민발안, 주민소환 등이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여론의 동향을 파악하여 이를 정책의 결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복잡하거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안의 경우에는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일반 시민들이 실제 사건 또는 현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기존지식, 가치관, 선입견 등에 따라 피상적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를 그대로 정책을 결정하는데 반영하기는 어렵다.

숙의민주주의는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시민들의 열린 소통과 이성적 토론 절차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참여민주주의와 차별화된다. 즉, 숙의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토의를 거친 후 투표 대신 합의에 의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본다.

숙의민주적 절차의 가장 큰 장점은 개인이 어떤 공적 이슈에 대해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제시한 자료와 근거를 충분히 파악한 다음 처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자가 선입견이 아니라 관련 자료를 다각도로 검토하여 최종 판단을 내리므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주요 사안의 경우에는 숙의민주적 절차를 도입하여 갈등을 해결하는 바람직하다.

공론조사는 가장 널리 알려진 숙의민주적 참여방식이다. 공론조사는 전통적인 여론조사가 특정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피상적 인식만을 조사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숙의적 요소와 여론조사를 결합한 것이다. 여론조사 참여자들 가운데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무작위로 추출된 100～500명의 참여자들을 선정하여 이들이 소정 기간의 숙의과정에서 찬‧반 양측의 주장과 관련 자료를 충분하게 검토할 수 있도록 한다. 토론참여자들은 학습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 성찰함으로써 기존의 생각을 변경할 수 있다. 공론조사는 주요 고려사항들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고 숙의했을 때 진영논리를 극복하고 우리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내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국내외에서 공론조사를 토대로 정책을 결정한 다수의 사례가 축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공사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여부에 대한 공론조사’(2017년 7월-10월)를 거쳐 건설을 계속하기로 한 결정이다. 공론조사를 공정하게 진행하려면 치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정치적 갈등에서 벗어나려면 중요한 정책의제에 관하여는 사안별로 시민들의 직접참여와 숙의민주적 절차를 적절하게 결합한 정책결정방식으로 전환하여 갈등 사안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