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이 내년도 2학기부터 중고생의 두발을 자유화하고 파마나 염색도 제한하지 않는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약55% 정도가 반대를 하는데, 연령별로는 2, 30대에서는 찬성의견이 높았지만 40대 이상에서 반대의견이 높았고, 성별로는 남성보다 여성의 반대 비율이 더 높았다고 한다.

두발자유화에 대한 찬반의견의 논거가 무엇인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두발자유화에 대한 토론을 해야 하는데 찬반의견의 논거가 무엇인지 가르쳐달라는 학생들의 요청이었다. 이러한 요청에 대한 답들 중 찬성의견의 가장 강력한 논거는 청소년에게도 헌법상 자유권과 행복추구권이 있다는 것이고, 반대의견의 가장 강력한 논거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청소년기를 어렵게 지내야 하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독일에 체류할 때 옆집의 여학생이 오후 2시쯤 즐거운 표정으로 귀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 학생에게 몇학년이냐고 물어봤더니 놀랍게도 고3이라고 하였다. 입시공부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공부는 대학에 가서 하면 된다고 대답하였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파김치처럼 지친 모습으로 학원에서 나와 귀가하는 우리나라 고3 학생들의 표정이나 생활과는 너무나도 다른 데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되어 보인다. 청소년기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나이에 걸맞는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그러나 우리 기성세대들은 청소년들이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청소년기를 인간이 아니라 공부하는 기계, 오직 대학입학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기계로 살아가는 시기이기를 원한다.

청소년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늦게 잠들기까지 세상과 담을 쌓고 오로지 국영수 위주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체력단련도 대학입시에 도움이 되는 범위에서만 허용된다. 대학입시를 위해 지나친 운동은 삼가해야 한다. 청소년이 컴퓨터 게임을 하면 부모들의 가슴은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학원에서 늦게 귀가해 밤 12시 가까워야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청소년이 컴퓨터 게임을 하면 부모들은 멘붕상태에 빠진다. 게임에 중독되었거나 중독될 것이라고 속단한다. 급기야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게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소위 셧다운제도를 청소년보호법에 도입하였다(제26조).

기성세대 누구나 청소년시대를 거쳤지만, 청소년과 대화하거나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을 요구할 뿐이다. 자녀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부모는 지옥에까지 가도 좋다는 각오로 지원을 해주지만 자녀가 다른 소질을 살리고 싶다고 하면 부모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이러한 부모들의 염원을 담아 놓은 법률이 청소년보호법이다. 청소년 유해매체물, 유해업소, 유해행위와 관련하여 금지되는 행위를 수없이 열거해 놓고 그것을 위반한 성인들을 처벌한다. 마치 면역력을 높여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균들을 죽여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과 같은 헛수고를 하고 있다. 한 때 여성의 속옷 광고가 있다는 이유로 여성잡지들을 비닐로 포장하도록 하였는데(지금도 이러한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당시에도 청소년들은 인터넷에서 여성이 속옷을 벗은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지금도 성인들은 무슨 윤리위원회인가에서 가위질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청소년들은 가위질한 부분만을 모아놓은 영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청소년 유해매체물, 유해업소, 유해행위로부터 청소년의 면역력을 키워주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 국산사자음미도체실 모든 과목에서 교육의 목표가 좋은 인성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별도의 인성과목을 신설해야 한다고 난리이다.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는 특별법은 있지만 청소년의 생명, 건강이나 자유 등과 같은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특별법은 없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처럼 청소년들의 기본적 인권을 이렇게 무시한 시대나 사회가 있을지 의문이다. 필자 역시 공범임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청소년들을 인간으로 보아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게 해 주어야 한다. 그깟 머리 모양이나 길이, 색깔을 스스로 결정하게 할 자유를 가지고 왈가왈부 할 때가 아니다. 청소년의 머리 색깔이 노랗다고 다른 사람에게 무슨 피해를 주는가? 맘보바지가 유행할 때는 교복바지의 폭이 좁아서는 안된다고 하고, 나팔바지가 유행할 때는 교복바지의 폭이 넓어서는 안된다고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청소년을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기계가 아니라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좀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자유를 올바르게 향유하는 법이야 말로 청소년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이전에 미리미리 배워둬야 할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