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대한 인식은 다양할 수 있지만, 실정규범으로서 인권은 권리이고 확정적인 것이다. 인권의 핵심은 권리침해를 당한 개인이 인권규범을 근거로 행정·사법기관에 대해 법적인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법과 제도는 사회와 함께 움직인다. 법은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 (mirror)이기도 하고, 사회를 움직여 가는 힘(motor)이 되기도 한다. 국제인권규범도 국제사회가 인간존엄에 대해 정한 내용을 보여주고, 동시에 인권보호의 미래를 제시한다. 법과 정책도 나눌 수 없다. 국제인권규범의 발전은 유엔을 포함한 국제조직과, 정부·비정부기구를 아우르는 인권주체들이 함께 정한 정책들의 집합물이다.

국제인권규범은 실정법을 넘어서서, 국제적으로 보호되는 인권, 국제인권 기준들과 제도들, 인권정책 형성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체제’를 뜻한다. 국제인권규범의 내용이나 형성과정은 여러 가지로 독특한 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국제인권규범은 시민들과 국제조직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국가보다는 유엔 등의 국제기구나 국제인권운동에 종사하는 비정부기구들이 국제인권조약들 대부분을 기초했고, 국가들의 채택을 독려하는 초국가적 캠페인을 벌여왔다.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을 움직여서 인권이 국가정책기조가 되도록 하고, 인권보호가 국가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근대적인 인식을 만들어냈다.

노예제반대 캠페인은 시민조직에 의해 펼쳐진 강력한 초기 인권운동중 하나다. 이후 후속 세대 운동가들은 아동매매·인신매매·강제노역 등으로 분야를 넓혀 갔고, 1990년 국제반노예기구 (Anti-Slavery International)로 개명하여, 최근에는 북한인권의 개선을 위해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국제인권은 ‘개인이나 집단이 사회 속에서 정부를 포함한 어느 누구에 의한 침해로부터도 인간이라는 이유로 보호를 보장받는 권리’로 이해할 수 있다. 인권은 침해될 경우 법률적인 구제가 부여되는 ‘권리’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된다. 또한 보편적으로 승인된 ’최소한‘의 기준이며 ’최대한‘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인권은 국제사회의 근본적인 인식전환에서 비롯되었다. 2차 대전과 전체주의의 집단학살을 경험한 국제사회가 국가를 더 이상 개인의 보호자가 아니라 잠재적인 인권침해자로 보게 된 것이다. 규범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단순한 인도주의사고에 머무르던 인권이 국제조약으로 변하고(근대화). 이후 국제법으로 확립되고 이행을 위한 인권체제들이 등장하는 과정(국제화)을 거쳤다. 각 국의 국내법으로 수용되면서(보편화), 비로소 사회구성원들의 규범의식 속에 각인되었다(내재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이후, 실정법으로서의 국제인권규범은 다양해지고 구체화되었다, 자유권과 사회권에 관한 양대 인권조약 외에도 집단살해·차별·고문의 금지, 아동과 난민보호, 이주노동자와 장애인 권리의 보호로 영역을 넓혀 왔다.

이제 유엔은 국제인권보호의 핵심적인 기구로서 인권논의의 중심이 되어있다.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도 주도적으로 인권보호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경제사회 이사회는 인권이사회와 유엔 UN 인권 최고대표 사무실이외에 다양한 인권조직들과 특별보고관 중심의 특별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9개의 주요 인권조약들을 관리하는 위원회들과 특별절차들이 개인들의 진정을 처리하고, 정부 보고서들을 심의한다. 인권침해를 당한 개인들의 문제를 국가를 넘어서서 국제조직들이 직접 처리하고 구제를 부여한다는 국제인권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유럽과 미주, 아프리카 지역들은 모두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지역인권체제를 운영하면서 지역내 주민들의 인권보호에 힘쓰고 있다. 지역내에서 적용되는 인권조약들과 함께 법원과 위원회 등의 이행조직을 두고 있고, 심의회와 같은 고위급 정치적 조직을 두어 실질적인 이행을 담보하고 있기도 하다.

수십 년간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유독 아시아 지역에만 지역인권체제가 없는 것은 유감이다. 문화와 정치체제들이 달라서 어렵다고 하지만, 궁극적인 실현은 지역 주민들의 정치적인 결단과 의지에 달려 있다. 유럽인들은 유엔 대신 우선적으로 유럽인권법원이 있는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미주인들은 워싱턴과 산 호세에서 인권침해의 구제를 받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도 지역 공동의 규범을 만들고 인권침해의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와 포럼이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제도와 이행 기구를 갖추기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유엔 헌장을 비롯해서 아시아 국가들이 이미 비준한 법적 의무들을 중심으로 아시아 인권헌장(Charter)을 제정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 제도를 확립해 나갈 것을 목표로 ‘위원회’설치에서부터 출발할 수도 있다. 세계 대전과 공산주의, 전체주의와 집단 학살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관용과 조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인권헌장 제정에 나섰던 유럽의 실패와 우를 반복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