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면서, 교육학을 따로 공부한 일은 없지만 조금씩 교육이라는 것에 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것을 전수해 주는 것이 교육이라고 여겼다. 차츰 회의가 생겼다. 특히 학교 “교육”이 졸업 후 각자 자기 인생의 개척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인지? 강의 방식에 회의가 일었다. 한 때 “교육”이란 가능한 것인가 회의도 일었다. 차츰 “교육“과 ”훈련“을 구분하는 것을 기본으로 강의 방식을 바꾸어 보았다. 후자가 일정한 지식이나 사고 혹은 행동 방식을 수강자에게 전달하여 이를 따르게 하는 것이라면, 전자는 참여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강의 내용 자체보다 이것이 학생들의 생각에 혹은 생각하는 방식에 어떤 자극을 주는 것인가 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 아닌가? 오래된 관행이나 “진리”만큼이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교육의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교수는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사고를 하는 능력, 즉 사고 활동(나는 이것을 두뇌 운동 cerebral exercise이라고 불렀다)을 활성화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여야 한다.

여러 가지로 실험적인 교수 방식을 실천에 옮겨보았다. 방학 전 다음 학기 강의 내용과 참고 서적들을 공시하고 강의에 참여할 학생들이 방학 중 스스로 어떤 주제에 관하여 발표를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발표에는 물론 질의와 토론이 따랐다. 이런 식 강의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를 떠나서 한동안 다른 일에 종사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효과를 충분히 평가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 단지 실험이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 하는 몇 가지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은 학생들의 발표가 의외로 우수했다. 어떤 발표는 내가 강의를 해도 저 이상 할 수 있었을까 의문(자괴감)이 나는 것도 있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제기하는 발표도 있었다. 그보다 더 흥미 있는 예도 있었다. 사회인이 된 사람들 몇에게 학교에서 전공한 것이 사회생활에 어떤 영향이 있던가 물어 본 일이 있었다. 답 중에 이런 것이 많았다: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가 준비하고 발표한 것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 담당하고 있는 과목은 “분단의 극복”이다. 남북한 관계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통일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난점은 수강 학생들의 전공이 제각각이고 주제와 관계가 멀어서 아마도 강의가 끝나고 시험을 치루고 나면 내용은 모두 잊어버리지 않을까?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각자 자기 전공 분야에서 북한에 관한 연구를 하여 이를 발표 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미술 전공 학생은 북한 미술에 관하여 정보와 함께 비평 그리고 앞으로 교류 협력과 관련된 의견을 낸다. 서로 다른 점이 교류를 통하여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등 등. 시험도 각자가 문제를 만들고 답을 쓴 후 평가도 한다. (이런 실험을 한 후에 이것이 나의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고 이미 아인슈타인이나 랜드 연구소에서 강조하는 문제라고 알게 되었다.) 단지 주제는 공통이다. 이번 중간시험 주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를 하는 사진을 보여주고 각자 문제를 제기하도록 하였다. 역시 기발한 문제들이 나왔다: 두 가지만 소개 한다: 1.“이 사진을 보고 사람을 웃게 할 수 있는 논평은?” 답은, “설마 하던 수령님이 탈북 하셨다.” 2. “악수하는 두 사람의 팔 길이를 보니, 한쪽은 짧고 한쪽은 길었다. 긴 쪽은 천천히 오랜 시일에 걸쳐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려고 한다. 짧은 쪽은 그 반대이다. 나는 팔 긴 사람을 지지한다.” 시험 후에 관한 평가를 하면서 내 나름대로 문제 하나를 제기하였다: “대전 후 분할 점령 통치를 받은 나라는 독일, 오지리 그리고 한국이었다. 그 중 오지리는 10년 만에 점령과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 독립국가가 되었다. 객관적인 여건이 우리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었던 독일은 45년 만에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 국가가 되었다. 우리는 73년이 지난 현재 양측 정상이 만나서 회담을 한 것에 모두가 축제 분위기이다. 막혀 있던 남북 관계가 트이게 된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축하만 하고 반성이나 우려를 할 여지는 없는가? 해방 후에도 우리는 들떠서 축하를 했다. 시인 구상, 백범 김구, 함석헌은 걱정이 앞섰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떤가? 한동안 무거운 침묵만이 있었다. <가천대학교. 국방 대학교 석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