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세월호를 인양하면서 당시 대통령과 정부의 조치가 적정했던가를 사실대로 밝히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영화 1987을 보면서 과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분노에 공감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도 법치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연한 현상이라 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제주 4·3 사건 추모식에 참석하여 국가의 폭력으로 고통을 입은 죄 없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한 점도 우리 정부의 인권의식을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나 국민의 이러한 자세는, 1948년 유엔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이 그 전문(前文)에서 ‘인권은 법에 의한 지배에 의하여 보호됨이 필수적’이고, 회원국들은 ‘국민 모두에게 권리와 자유의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인정과 준수를 위하여 힘쓰도록 한다’는 정신에도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나 사회의 이러한 모습은 자세히 살피면 모두가 우리의 바람직하지 못했던 과거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과거의 잘, 잘못을 가리는 것만으로 미래의 바람직한 인권보장이라는 결과가 당연히 찾아온다고 볼 수가 있을까? 국민의 권리라고 생각해 오던 기본권을 그것은 단순히 ‘국민’의 권리라기보다 ‘인간’의 권리라고 강조하면서, 정부가 구상중인 헌법개정안에 이를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문명한 선진국의 문턱에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믿어도 좋은 것일까?

많은 국민들은 지난해의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이후의 나라정세에 크게 고무되면서도 특히 경제와 국방, 외교 분야에서의 국가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물론 그 걱정 중에는 보수적인 고착관념에 따라 이미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굳어버린 계층적, 지역적 한계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인권보장 측면에서 보더라도 다음과 같은 한두 가지 점은 우리가 반드시 함께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믿는다.

첫째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한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헌법 정신(제 37조. 정부의 개정안도 같은 취지다)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부 강압적인 통치방식에도 불구하고 수출주도형의 경제건설로 우리나라를 국제적으로 평가받는 국가로 발전시킨 점은 아시아 각국을 비롯한 세계가 이미 인정하고 있다. 사실은 그런 바탕위에서 우리의 국가경쟁력도 결코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이 140개국 중 26위, 국제경영개발원(IMD)이 61개국 중 29위 정도로나마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높은 경쟁력과 안전성을 갖춘 원자력 발전소를 오히려 줄인다는 정책방향이나, 금년도의 최저임금을 지난 해 보다 16.4%나 한꺼번에 올려 2018년 1분기의 임시·일용직 일자리가 18만개 가량이나 줄었다는 이른바 ‘일자리 쇼크’와 같은 사례 등은 그 정책적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코 착한 인권보호로만 종결될 수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국가발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권보호도 이제는 과거의 개인적 경험이나 시각 의 차원을 넘어 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 쿠데타에 의하여 집권한 정부의 강압정치를 경험한 세대로서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일이 최우선의 가치였겠지만, 바로 그 국가권력을 국민의 합법적 선택에 의하여 위임받은 처지에서는 인권보호 자체를 미래지향적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 위한 사회적 에토스로 이끌어 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검찰개혁이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문제이든, 사법부의 체질개선 문제이든 가리지 않고 중요한 공통의과제로 될 수밖에 없다. 중요공직자의 인사문제도 그래서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의는 거부될 수 없고 지체되어서도 안 된다는 법 격언이 있다. 촛불데모를 거쳐 민의에 의하여 탄생한 정부는 그 인권정책에 있어서도 국민이 바라는 정의를 바탕으로 보다 미래지향적 국가발전까지를 염두에 둔 정책을 펴가도록 간절히 소망해 본다. <국민대 명예교수,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