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성인 교육기관으로 國子監이, 그리고 이조시대에는 成均館이 있었다. 이 때 교육의 과제는 三綱五倫, 忠孝思想이며 학문을 닦는 儒生 그리고 선비들의 바람은 英名한 임금이 善政을 펴는 것이었다. 그러나 임금이 폭군일 때 선비와 유생들은 그 끝이 어찌될 것인가를 알면서도 임금 앞에 무릎 꿇어 간언하였고 결국 끝에는 그들이 참살당한 예를 보았다. 이처럼 유생이나 선비들은 君主의 선정을 촉구하는 일에 그들의 목숨을 걸었었다. 이씨조선이 500년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같은 선비가 있어 가능했다.

일제식민지 때인 1924년 京城帝國大學이 개교하였지만 이 대학은 주로 日本人 학생을 위한 교육기관이었고 1945년 해방 때까지 이 대학 출신인 한국인 理學士는 단지 4명에 불과하였다. 대신 통치에 필요한 조선인의 전문직종 양성을 위하여 공사립전문학교를 개설하였다.

1946년 경성제국대학이 몇몇 전문학교를 흡수하여 國立서울綜合大學교로 발족하였다. 左翼은 미국식 교육체제로의 改編이라며 동맹휴학 등으로 소위 國大案을 반대하였다. 그런 진통 후 發足한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여러 道에 국립대학이 개설 되었고 또한 전국 각지에 私立大學이 문을 열었다. 日帝 때 교육받지 못한 恨에 맺힌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드는 學費를 소 팔아 댄다고 해서 대학을 牛骨塔이라고도 했다. 6.25 전쟁 후 니라가 안정됨에 따라 대학교육도 내실을 다지며 자리잡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대학은 교육, 연구 그리고 봉사의 세 가지 기능이 있다고 한다. 즉 진리를 추구하며 지성과 양심을 갖춘 人材를 양성하고, 연구를 통하여 학술발전에 기여하며 쌓은 지식으로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봉사하는 知性의 집단이다. 따라서 대학은 사회 그리고 정치권의 不條理를 규탄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음은 당연하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이 군사정부를 수립한 후 20여 년 간 대학가가 軍事獨裁政權 타도와 民主化를 요구하는 극열한 示威를 거듭한 것도 바로 대학이 지성의 중심축이었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중하다며 割腹, 投身 등으로 젊은 생명을 버린 학생 수가 적지 않았다. 물론 경찰이 시위에 가담한 학생명단을 대학에 통보하면 총장은 즉시 해당 학생을 제명처분 등 중징계한 때도 있었다. 이들은 3, 4년 후 다시 대학으로 복학하였다. 이처럼 나라의 민주화 쟁취는 당시 학생사회가 껴안은 絶體絶命의 과제였다. 우리나라가 정부수립 후 반세기의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학생들의 그 같은 殺身成仁의 희생이 있어 가능했다.

한참 대학가 시위가 격렬할 때 서울대학교를 방문한 당시의 도쿄대학교 아리마 총장은 우리 학생들의 눈에서 빛이 나며 살아있다고 감탄했다. 이때의 민주화에 앞장섰던 학생들이 결국 사회에 나가서도 나라 근대화에 헌신하였다. 그들은 남북분단의 부담을 견디며 결국 우리나라를 세계최빈국에서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주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반세기의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경제부국을 창출한 주역인 세대가 정치, 사회의 부조리를 목숨 걸고 비판한 대학의 지성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대학의 기능이 달라질 수 없다. 만일 오늘의 대학생을 대한 도쿄대 총장이 여전히 그들의 눈에서 빛난다고 할 수 있을까. 근래의 대학생에서 옛날 선배들이 지녔던 기개를 찾기는 어렵다. 대학이 단지 예비직업인 양성기관이고 졸업 후 취업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이 오늘의 대학의 실정이다. 지난 날 선배가 보였던 義氣와 지성을 찾기 어려운 근래 대학생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대학은 지식전수만이 아니라 나라가 옳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감시하고 秕政을 비판할 능력을 양성하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귀한 목숨을 버려가며 민주화쟁취를 위하여 투쟁에 나섰던 80년대 때 같은 과도한 정치참여를 바라지는 않지만 아직도 정치문화, 사회질서, 경제 및 복지수준이 뒤쳐져 있는 현실을 외면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국민은 대학지성이 정치권과 사회질서에 대한 부단한 감시와 냉철한 비판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하고 또한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전 서울대 총장‧교육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