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막 의사로서의 꿈과 자부심이 가득 차있는 의사 초년생이었던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것은 의사들 사회가 마치 군대와 같은 분위기로서 절대복종하는 수직관계라는 것이고, 이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욕을 듣거나 얻어맞아야 하는 것에 실망하였다. ‘내가 과연 전문의가 되고자 이런 굴욕적인 생활을 견디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비합리적인 욕설을 들어야 할 때마다 머리속에 떠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전공의 시절 단체로 회식을 나가 술자릴 갖는데 두사람이 술자리를 피해 일찍 귀가한 사실에 화가 난 수석전공의가 술자리에서 아랫연차 잔공의들의 따귀를 때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자 새벽 1-2시에 당직실로 모두 소집을 하여 재차 뺨을 때렸던 일이 지금도 가슴 아프게 남아있다.

그 당시 얻어맞아 입안의 점막 손상으로 피가 나고 좀 부어서 양치질을 못하였지만, 맞은 충격이 아파서가 아니라 머리나 얼굴을 맞았다는 치욕스러운 감정이 머리를 짓눌렀다. 그리고 어떤 개인의 감정에 의해 그러한 폭력이 자행되어도 어쩔 수 없이 당해야만 하는 현실도 답답하였다. 자기가 못 견디겠으면 전공의를 그만두어야 했지만 난 의사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모님에게 병원에서는 맨날 혼나고 드물게 얻어맞고 지낸다는 얘기를 해드릴 수도 없고, 전공의를 그만 두겠다는 말씀을 더더욱 할 수 없었으며, 전공의를 그만두면 그 다음의 나의 진로가 보이지 않아 용기를 내지도 못했다. 나보다 더 혹독하게 폭언폭행을 당했던 전공의들이 그 시절엔 엄청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70년대 수련받은 선배들의 얘기가 그때는 더욱 심하게 수직적 계급 격차가 있어 1년차이에서도 구타가 훨씬 많았다는 것을 들으면서 ‘난 그래도 운이 좋은 거야’하고 위안해야했다.

그런데 자신이 당했던 이러한 폭언과 폭행이 왜 대물림하여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것일까? 당할 때는 싫었어도 자신이 높아지면 아랫사람(?)을 조롱하거나 혼내는 것이 즐거운 것이거나 아니면 무슨 일을 처리할 때 아랫사람들을 무섭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자신이 당할 때는 무척 괴로워도 자신이 남을 괴롭히는 것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가? 지금까지 몇십년동안 수석 전공의 시절 누구나 아랫년차 전공의에게 한마디씩 하는 얘기가 있다. ‘난 위년차로부터 심한 학대에 시달렸지만 너희들은 잘 지내고 있는 거고, 난 지금 너희들에게 엄청 잘해주고 있는 줄이나 알아라’

폭언 폭행이 비록 의사들이 수련받는 사회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1-2년전 우리사회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에서도 회사 내에 인턴사원은 거의 노예와 같았고, 폭행은 손찌검수준이고 폭언은 매우 심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상하계급이 뚜렷한 서열화된 조직에서는 어느 조직이던 간에 절대복종을 요구하게 되어 이러한 폭언폭행이 끊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대학병원의 수련의들에게는 환자들의 생명 앞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는 것이 추가되어, 조그만 잘못이라도 용납될 수 없어 폭언폭행이 필요악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묵인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대한의사협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전공의들이 폭언은 86.2%, 폭행은 30.5%, 성희롱은 33%가 경험하였다고 했다.

과거 80, 90년대에 비해 2010년대에 전공의가 수련도중 그만두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비인기과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인턴과정의 수련의들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교수님들의 대체적인 의견으로는 요즈음 전공의들이 1-2명중의 한사람으로 태어나 부모로부터귀하게 대접받고 자라서 가볍게 야단을 쳐도 쉽게 좌절감을 느끼고 전공의를 그만 두려는 것 같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만두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폭언폭행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같이 비합리적이고 굴욕적인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의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박차고 나가는 것이다.

우리 의사들은 교과과정에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대화의 방법이나 훈련이 없었고, 더욱이 교수나 수석전공의가 아랫사람의 인권을 존종해야 한다는 것을 들은바 없다. 인권 앞에서 아랫사람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교수와 전공의 모두는 서로 존댓말을 사용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교육시킨다며 손찌검이나 욕을 또는 비하하며 야단을 치는 것이 범죄는 아닌가? 전공의들은 그저 학교동아리 수준의 선후배로 다같은 피교육자 신분인데, 아래위 년차간에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계급의식을 도대체 누가 설정하였는가? 이제는 병원도 달라져야 한다. 체계적인 폭언폭행, 성희롱에 대한 예방교육과 대처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 처벌 또한 솜방망이가 돼서는 안된다. 몇 년후에는 나를 뛰어넘어 훌륭하게 성장할 수도 있는 전공의들에게 혹시라도 조롱이나 갑질을 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가족처럼 소중하게 대하였는지 조심스럽게 돌이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