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17년 9월 3일 여섯 번째 핵실험을 감행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 수소폭탄이 완성단계이고, 핵전자기파(EMP) 공격능력도 갖추었다고 주장한다. UN이 신속하게 제재에 나섰지만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직 부족하다. 햇볕정책이든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이든 북한에게 핵개발 기회만 주었다는 비판이 있다. 어느 때보다 한미공조가 강조되고 있다. 사회 일각에는 사드(THAAD) 배치는 극력 반대하면서 북한의 핵은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안타깝다.

북한은 6.25전쟁 직후 핵개발에 착수했고, 1990년대 독일 통일과 동구제국 몰락을 맞게 되자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국제기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한반도비핵화를 미끼로 한국의 전술핵을 철수시키고 비밀리에 핵개발을 가속해왔다. 핵을 담보로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후 연방제통일을 이룬다는 목적이다. 북한은 벼랑끝전술을 구사하여 남북교류를 통해 돈만 챙기고 대화는 미국과 한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포기한 적이 없다. 2012년에는 헌법을 개정하여 핵주권, 핵보유국을 공공연히 선언했다. 언론은 최근 북한지도부가 핵을 통한 대남적화통일을 노골적으로 공언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핵을 북·미간 문제라면서 쌍중단(雙中斷 :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 : 한반도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평화협정 협상)을 주장한다. 한국의 사드 배치는 보복으로 대응하면서 북한 핵은 간 건너 불 보듯 하여 한반도비핵화를 이중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은 대남적화전략 차원이고, 한·미·일·중·러의 공동안보와 직결돼 있다.

서독도 핵 위기를 겪었다. 소련은 미국과 동독이 수교한 직후 1975~76년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에 SS-20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배치했다. 슈미트 당시 서독 수상은 소련과의 협상이 실패하자 1977년 소련이 동독에서 SS-20을 철수하지 않으면 서독도 미국의 퍼싱-Ⅱ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배치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브란트 총재 등 대다수 사민당 인사가 이를 반대하고, 상당수는 사민당을 나가 녹색당을 창당했고, 연일 반대시위가 이어졌다. 슈미트는 동독의 핵미사일은 왜 규탄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오로지 국가이익에만 봉사했다. 나토(NATO)는 1979년 12월 이중결정(double-track decision) 전략으로 소련을 압박했다. 슈미트는 1982년 기민당 소속 후임 수상 콜에게 동독과 소련에 구축한 핫라인을 인계하였다. 콜 전 수상은 이듬해 퍼싱-Ⅱ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동독과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과 차관도 병행하여 1987년 미·소간의 중거리핵미사일폐기협정(INF)을 타결시켰다. 독과 공포는 상응하는 것으로 극복된다는 것(以毒攻毒, 以恐制恐)을 실증했다. 독일 통일 이후 반대시위 핵심세력은 동독 공산당과 연계돼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고,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슈미트 전 수상에게 모스크바는 퍼싱-Ⅱ에 무방비였다고 고백했다. 콜 전 수상은 2009년 10월 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 기념식에서 나토의 이중결정전략이 없었다면 1989년 베를린장벽 해체와 1990년 독일 통일은 없었다고 회고하였다. 독일 통일은 힘의 우위정책(Politik der Staerke)과 동방정책(Ostpolitik)이 힘을 합쳐 동구제국의 붕괴에 때맞추어 결단한 역사적 산물임을 확인한 말이다.

북한 핵은 정치적 접근이 최선이다. 그러나 긴밀한 한미공조 속에 중·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실효적인 대북제재가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어야 성공한다. 북한이 핵을 실전배치하면 때를 놓친다. 북한을 제압할 대응전력도 빨리 갖춰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도 협상전략이다. 한미공조만 견고하면 이스라엘의 결기와 인도의 외교력을 원용하자는 고언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핵 폐기를 해제조건으로 하는 NPT 탈퇴와 핵개발이 쉽지 않다면 전술핵이나 핵무기공유시스템은 NPT에 반하지 않고 우리 비용도 크게 들지 않으니 전략적 모호성(NCND)에 맡기면 어떨까? 미국 핵우산의 실효성과 신뢰성도 단단히 챙겨봐야 한다. 북한의 핵 폐기와 개혁개방이 투명하게 보장되지 않는 섣부른 평화체제 전환은 한미방위체제 해체의 명분만 제공하고 우리를 대륙세력과 북한 핵의 포로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전승(全勝)하려면 미리 그 조건을 만들고 위세로써 상대를 제압하라 했다. 이순신의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도 필요하다. 율곡은 만언소(萬言疏)에서 정치는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政貴知時), 일은 실질에 힘쓰는 것이 필요하다(事要務實)고 했다. 서애는 임진왜란을 겪은 후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환란이 없도록 조심하라며 징비록(懲毖錄)을 남겼다. 사즉생의 만언소와 징비의 정신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