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란 말이 있다. 적법절차(Due Process)란 말도 있다. 모두 우리 헌법 제27조에 정하여진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구체적 실천과정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지금은 결론이 옳더라도 절차가 틀렸다면 옳은 재판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견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오늘은 절차적 정의가 결여된 한 재판과정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한다. 한 단면에 불과하지만, 한 사람의 살아온 가치를 그렇게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생각도 이 글의 단서가 되었다.

글의 본론을 시작하려 하니 두 개의 역설적인 장면이 머리에 떠오른다. 하나는 「IAPL Seoul Conference 2014」 조직위원장 중의 한 사람이었던 필자가 위 회의에서 우리 대법원을 위한 입장을 피력했던 순간이다. 다른 하나는 35년도 넘게 지방공무원으로 봉직한 피고인에 대한 상고사건의 진행 과정을 통하여 본 「2017 대법원 재판의 절차적 정의」에 관한 한 모습이다.

IAPL(International Association of Procedural Law)은 절차법, 그 중에서도 민사소송법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국제적인 학회이다. 세계 여러 나라가 돌아가면서 세계대회를 연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2014년에 대회를 유치하였다. 금년 개최국은 중국으로 아시아에서 3번째다.

위 서울 총회에서 어떤 서양 학자가 세계의 대법원 중 귀신(?)이 근무하는 대법원이 있는데 그 중 제일은 브라질 대법원이고, 두 번째는 한국 대법원이라고 하였다.

한국 대법원이 연간 3만건도 넘는 사건을 12명이 처리하는데 귀신이 아니고는 처리할 수 없지 않느냐는 취지였다. 그러나 법원에 30년 넘게 봉직한 필자는 상당한 실무경험이 있는 판사와 그 외 다른 전문가 120여명이 재판연구관으로서 대법관 12명을 보좌하고 있으니 귀신재판은 아니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아쉽게도 참가자들의 동의는 거의 없었다. 그 당시는 적어도 연구관의 기본검토가 상당히 신뢰할 만한 것이라는 필자 자신의 믿음에 근거한 발언이었다.

여기쯤에서 그러한 믿음의 약화 단서가 되는 위 상고사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

다. 그 공무원은 상급자인 군수의 요청에 따라 실무자로서 공사수급업체에 하도급 관계를 알아보았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공갈미수로 기소되었다. 또 관계자와 골프 치면서 19만원 부담시켜 수뢰로도 기소되었고, 모두 유죄를 선고 받았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는 유죄선고에 펄펄 뛰었고, 형량도 상식 이하라고 주장하였다. 기록검토 결과 공갈미수는 고소인인 공사업자가 조작한 느낌이 매우 강하여 그 공무원의 처남인 K변호사와 함께 사건을 맡았다. 그런데 사단이 터졌다. 상고이유서를급히 내고, 보충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20여 일 만에 바로 선고기일이 잡힌 것이다.

의뢰인은 수차례 전화로 애꿏은 필자에게 항의하였다. 그 많은 기록을 어떻게 그 안에 보고, 그렇게 빨리 결론을 낼 수 있나? 연구관의 형식적 검토, 주심대법관의 사무적 결론이라며 검사로 봉직했던 K변호사도 불만을 표명하였다. 35년도 넘게 봉직한 지방공무원의 한 인생의 무게를 「그렇게 빨리」, 「그렇게 가볍게」평가할 수 밖에 없는지? 필자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다. 연구관이 제대로 검토할, 대법관이 그 기록 제대로 볼 시간이 지났나? 35년의 세월이 20여 일의 판단에 의하여 결단나는 것을 그냥 두어야 하는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양심(?)의 저항 때문에 대법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되도록 당사자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였다. 「절차적 정의」가 상실된 것에 대한 지적에는 누구도 이의할 수 없는 그 처리과정, 한 순간에 한 사건으로 연구관 보고서의 기록 보기에 대한 신뢰가 많이 저하되었다.

2017년에는 대법원이 4만 여 건의 사건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12명의 대법관과 130여명의 연구관으로서는 애시 당초 「기록보기 불가능」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수년간 「상고법원」, 「상고부」를 만들어 현상을 타개하려 했던 대법원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대법원의 고충이 클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한 사람의 전 인생이 걸린 사건」을 20여 일 만에 처리할 일은 아니다. 재판을 잘못하면, 그 자체로만도 「업을 쌓는다는 것」이 된다는 엄숙함과 진지함, 한사람이 「전우주」라는 종교적인 명언, 그때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졸속처리를 막는 것이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K변호사의 지적에 마음 한 구석이 너무나 허전하였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갖는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보장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의 형편이 어렵더라도 한 사람의 전 인생이 걸린 사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 10조의 정신에 따른 재판을 하여야 한다. 국민들도 인간이 근무하는 대법원이 되도록 지혜를 모와야 한다. 그래야 절차적 정의가 확보되는 재판이 가능해지리라는 간절한 소망, 끝에 적어둔다. <법학박사, 전 특허법원장‧서울행정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