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權法 제정 빨리 서둘러라

朴銖吉 <전 유엔대사ㆍ현 유엔 인권소위 위원>

   1992년 세계인권회의에서 "비엔나 선언"과 "행동 강령"이 채택된 이래 유엔 인권위원회는 매년 유엔 회원국에 대하여 인권의 효율적인 보호, 증진을 위하여 국가 인권위원회를 설치, 운영할 것을 권유해왔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50여개국이 국가인권위를 설치해 인권침해의 예방과 구제, 인권 교육의 확산 등 민주주의 실현에 노력하고 있다.

人權委 성격 놓고 異見

   김대중 정부가 인권분야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오던 인권위 설립은 법무부의 연구와 검토를 거쳐 인권법의 형태로 1999년 4월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폐기되고 말았다. 16대국회 들어 민간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한 수정인권법안이 다시 제출됐으나 아직 채택되지 않고 있다.

   정부당국과 민간단체, 학계는 지난 2여년간 세미나, 공청회 등을 통해 인권법안에 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토론을 전개해왔고 10여차례의 당정협의도 이루어진 상태이다. 이 같은 토론과정에서 정부당국과 인권 단체간에 핵심적 쟁점으로 떠오른 사항은 인권위원회를 민간기구로 하느냐 정부기구로 하느냐, 관할권을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와 차별 행위 등으로 제한 하느냐 아니면 보다 광범위하게 하느냐, 조사권과 구제조치 등 기능을 권고적 성격으로 하느냐 구속력 있는 것으로 하느냐는 문제 등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각국의 입법례와 유엔인권기구 설립권고안 등이 참고가 될 것이나, 한 국가의 정책 결정은 그 나라의 특수성과 법체계, 정치문화 등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유엔의 인권기구설립 권고안은 인권위가 정부와 분리 독립하여 인권을 보호, 증진하고 국가 인권기관의 결함을 보완토록 권장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은 독립적인 인권기구 없이도 인권보장이 잘되고 있는 나라들이다. 일부 동남아 국가는 독립적인 인권기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인권 남용이 적지않은 나라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인권의 효율적인 보호, 증진은 인권위원회 유무나 그 형태의 문제라기보다는, 법의 지배에 기초한 민주주의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느냐의 여부, 국민과 법집행자의 법의식, 정치ㆍ법 문화 등에 의하여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하겠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인권법안은 인권기구를 민간기구로 하되 독립성을 강화하고, 기능면에서는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권리구제 및 체계적인 인권교육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유엔 인권위의 설치 권고안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민간단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밑에서 행해진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와 법원, 검찰에 대한 일반적 불신 등을 들어 인권위를 독립적이고 강력한 국가기관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인권단체의 계속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의 형태를 민간단체로 한 것은 법체제 면에서 문제점이 있고, 정부 내에 방대한 또 하나의 관료 조직을 만드는 것이 정치적으로나 효율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앞으로 법안심의과정에서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고려, 우리 여건에 보다 적합한 제도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黨政, 좌고우면 지나쳐

   현재 여당 일각에서는 인권법 제정을 의원 입법형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인권법을 불필요하게 정쟁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스스로를 "인권중시 정부"라고 표방하는 현 정부에서 인권법 논란이 이처럼 2년 이상을 끌고 있는 것은 정치권, 특히 여당의 우유부단과 좌고우면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수상한 노벨평화상의 빛이 바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더 이상 인권법 제정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여당은 우리 국가현실과 유엔 인권위의 정신에 가장 적합한 제도가 무엇인지를 판단, 하루속히 국회에서 인권법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