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ㆍ러 駐韓美軍 철수와 한반도 정세

高在南 (외교안보 연구원 교수)

   지난 4일 러ㆍ북 정상회담 후 채택한 ‘모스크바 선언’ 이 지난해 7월의 ‘평양 선언’ 과는 달리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포함하고 있어 그 의도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對美협상력 제고 맞대응

   필자가 아는 한 러시아는 그동안 주한미군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입장표명을 유보해 왔다. 단지 정부관리 및 한반도 전문가들이 사견임을 전제로 주한미군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즉 주한미군은 북한의 군사적 대남도발을 억제하면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유지에 기여함은 물론 중.일간 군비경쟁을 약화시키면서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공헌하고 있다는 평가였다.  물론 1990년대 후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대와 유고공습, 미ㆍ일간 방위협력의 강화 등이 진행되면서 러시아인들 사이에 한ㆍ미ㆍ일 동맹관계를 나토형 대(對)러시아 견제 군사블록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졌으며, 그 결과 남북통일 후 미군주둔에 대해서는 약간 부정적 견해가 피력되기도 했다.

   주지하는 바 북한은 전통적으로 주한미군을 대남 적화통일에 가장 큰 장애물로 인식, 주한미군 철수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한미군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전해지면서 북한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됐다. 물론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후 북한 관영통신들이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재거론하기 시작했지만 그 강도가 낮아 일반적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모스크바 선언'에 포함됐을까. 결론적으로 러ㆍ북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양국의 대미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맞대응 전략이며 따라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고 단지 남북대화, 북.미대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외교적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북한은 그동안 지난 6월 부시 대통령이 대북대화 재개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세가지 협상의제, 즉 제네바 핵합의의 이행개선, 미사일의 개발 및 수출 금지, 재래식 무기감축 등에 대한 대응전략 마련에 고심해 왔다. 이는 미국의 공개적인 대화 재개 제안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온 것이 증명해 주고 있다. 이들 협상의제 중 재래식 무기 감축문제는 북한에 있어 꼭 피해야 할 의제 중의 하나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에 핵무기와 미사일의 개발 및 배치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가 급선무라는 생각을 할 것이며, 이러한 인식은 지난해의 서해교전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고 본다. 이번 金위원장의 핵심적인 방러 목적은 러시아의 첨단무기 및 무기부품 구입을 통한 재래식 군사력 강화에 있었다. 

  러시아의 경우 지난달 22일 제노바에서 개최된 미ㆍ러 정상회담에서 공격용 및 방어용 전략무기에 대한 협상을 동시에 진행시켜 나가기로 합의한 후 오늘부터 본격적인 실무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지난달 16일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개최, 신조약을 체결하는 등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에 대한 반미연대를 강화해 왔다. 러시아의 주한미군 철수이해 등 대북 협력강화도 이러한 대미협상을 앞두고 연대세력을 신장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남북관계 등 호재 될 수도

   그렇다면 러ㆍ북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물론 이는 러시아의 한반도 안보문제에 대한 개입여지를 확대시키고 북한이 대미관계. 대남관계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제기함으로써 과거처럼 양자협상이 지지부진해질 수도 있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ㆍ러시아 모두 미국과의 관계개선 및 현안 해결이 없이는 국제사회에서의 고립탈피와 내부적으로 시급한 경제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관한 한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주한미군 철수와 이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라는 협상카드의 확보는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는 효과로 작용할 것이고, 이는 북ㆍ미관계,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