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말로만 'CO₂제로'

[조선일보 2008-03-24 03:03] 

석유 수출 세계 3위 노르웨이 '배출 0'
선언 환경단체 "감축 노력 대신 돈으로 손쉽게 해결"

   해외 숲 조성, 후진국 환경산업 투자 등을 통해, 자국 내에서 내뿜은 만큼의 온실가스를 상쇄(offset)해 '탄소배출 제로(0)'를 달성하는 '탄소 중립(carbon neutral)' 방식. 기후 변화를 막겠다며 이런 방식의 '탄소 중립'을 선언하는 국가·기업이 늘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높아가고 있다. 자국 내에서 탄소배출을 감축하려는 고통스러운 노력 대신에, 손쉽게 돈으로 해결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줄 잇는 탄소 중립 선언

   AFP통신 등에 따르면, 유럽 정상들은 지난 14일 브뤼셀에서 지구 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수준보다 20% 줄이기로 합의했다. 노르웨이는 이미 한 발 더 나아갔다. 지난 1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 국가가 되겠다는 계획을 20년 앞당겨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작년 5월엔 뉴질랜드가, 이어서 코스타리카와 바티칸 등도 '탄소중립 선언' 대열에 합류했다. 루퍼트 머독(Murdoch)은 작년 10월 자신의 '미디어 제국'인 뉴스코프를 탄소 중립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구글·야후·HSBC·월마트 등도 비슷한 선언을 했다.
 
◆"감축 노력은 뒷전"

   뉴욕타임스는 그러나 노르웨이의 '탄소 중립' 선언에 대해 "자국 내 CO₂감축을 위한 노력이나 시민 희생, 기술 혁신 등과는 무관하다는 게 문제"라고 22일 꼬집었다. NYT에 따르면, 세계 3위 에너지 수출국인 노르웨이는 원시림 파괴 방지 노력 등에 5억 달러(약 5000억원)를 내놨다. 그러나 내부 희생이 필요한 비행기 운항 감축, 기업 규제 등의 조치에는 미온적이다. 바티칸은 CO₂ 배출 상쇄를 위한 숲을 헝가리에 만들었지만, 성직자 여행이나 바티칸 외부 자산의 CO₂ 배출에 대해선 침묵한다. 미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납품 업체에 탄소 감축을 채근하면서도, 차를 몰고 오는 쇼핑객 문제는 방관한다.

◆"소비 축소·고통 분담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7일 "선진국으로선 고(高)오염 산업을 후진국에 이전하고 원시림과 늪지를 파괴해 바이오 연료용 작물을 재배하면 자국 내 CO₂ 배출량을 줄일 수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지구 온난화를 멈출 수는 없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세계의 굴뚝' 중국의 CO₂ 배출을 비판하기 전에, 중국에서 수입하는 CO₂ 배출 유발 상품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두꺼운 유기물층에 대량의 CO₂를 품은 늪지인 '피트 랜드(peat land)'가 선진국에서 쓸 바이오연료의 원료가 되는 야자를 재배하기 위해 파괴된다. 이 과정에서, 해마다 세계 CO₂ 배출량의 4%가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다.
   디터 헬름(Helm) 옥스퍼드대 교수는 WSJ에 "선진국들의 '탄소 배출 제로(0)' 방식은 '눈속임을 통한 진실 은폐(smoke and mirrors)'일 뿐이며, 이대로라면 CO₂배출량은 2030년까지 50% 늘어나게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