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이래 아무리 오래 존재했던 역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 살아 움직이는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한 그 역사는 현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집트의 문명이 6천 년이라 하지만, 지금의 이집트가 요즘과 같은 형편에 있는 한 지나간 과거의 역사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 놓은 문화재가 아무리 놀라운 바가 있다 할지라도 지금의 우리가 그보다 훌륭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문화재 자랑은 못난 자식의 조상 자랑 이상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유산이 지금 여기에서 현저하게 생동하고 있지 못한 현재 역시 사라지는 시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서 더 좋은 역사의 앞날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진지한 건설 노력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의의는 과거나 현재보다도 오히려 미래 관계에서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교육자의 사회적 위치와 사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일생이 그 가정의 미래와 직결되듯이,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치는 교육자의 위치도 그렇게 평가되는 것이다. 동양 윤리에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은 서양에서 흔히 보는 매매 관계나 직업의식을 초월한 숭고한 교육 의식이 담겨져 있는 말이다. 

   교육자를 우대한다는 것은 생활비나 넉넉하게 주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라는 등의 상식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선 교육자에게 자기의 교육 이념을 실현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된다는 말이다. 

   교육은 기구나 기교나 명령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본질은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 정과 사랑과 지혜와 지식의 전승과 교류, 그리고 인간성의 창출과 성장에서 그 참모습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자가 외부의 규격적인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게 마련인 경우에는 하나의 기계로 화하는 것이며 어떤 행사가 그럴 듯하게 행해지고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일과성 행사 이상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것이다. 교육의 가치는 자유와 자기 결단에 의한 자발적 행위 및 창의의 생성에서만 생명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자에게 인물 양성의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교육 기관이란 국가 공무원이라는 규격품을 다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특성을 소질대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인물을 육성하는 학원(學園)인 것이다. 

   진정한 교육자의 눈으로 볼 때에는 쓸모없는 학생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을 받고자 원하는 사람은 다 받아서 교육시키고 싶은 것이 교육자의 심정이다. 교육받은 사람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의 수준은 전면적으로 높아지고 밝아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직업 없이 고등룸펜이 된다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마음을 먹기에 달린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농부, 대학을 졸업한 직공, 또는 어부 등등이 만약 대학 졸업을 하나의 간판 따기로 그치지 않고 오히려 좀 더 창의와 성실성을 가진 노동자, 농민 등의 직업인으로 봉사할 각오만 굳게 다진다면, 그들은 어디서나 틀림없이 대학 졸업자로서 존경을 받을 것이며 보람 있는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이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 국어나 수학이나 영어에 몇 점 더 받고 덜 받는 것만으로 측정될 수가 없다. 과목 득점에는 비록 평범하다 할지라도 그의 의지와 그의 사회적 봉사에 대한 정열, 또는 그의 비전의 스케일 등에는 비범한 사람이 많다. 그러한 사람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는 동안에 거대한 인물로 육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적 능력이 비범한 사람에게만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면, 결국 그 사회는 심한 불균형으로 전체적인 국가의 운용과 이익에 차질을 빚고 말 것이다. 

   또 교육자의 위신과 지위를 높이 대접해야 한다. 생활의 보장도 보통 시민에게 허용된 정도의 것은 보장해주어야 하겠지만 그를 위로하고 존경하여 스스로 대접하는 마음의 태도가 더욱 요청된다. 교육자는 ‘성 밖에 서서 후학들로 하여금 자기 어깨를 밟고 그 성을 넘어가게 하고 그 최후의 한 사람까지 그러한 다음에  자기는 성 밖에 혼자 우두커니 남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 심정에는 자랑스러움도 있겠지만 외로움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어깨를 밟고 성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홀로 ‘우두커니 성 밖에 남은’ 교육자를 위로하고 높이고 존경해 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제자다 아무리 뛰어나게 높아졌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기까지 자기에게 어깨를 밟게 한 스승을 멸시하거나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육자 자신들에게는 늙어 죽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는 사명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어서 교육자 됨을 끝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후배를 위한 제사장적인 ‘대도(代禱)’의 책임이 있다. 비록 강단에서 강의하거나 교육 기관에서 행정을 맡은 일이 끝났다 할지라도 그의 스승으로서의 구실만은 단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다음 세대가 잘 살기를 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바르게 살기를 더더욱 간절히 기원한다. 그는 다음 세대가 성공하기를 빈다. 그러나 그보다 그들이 더욱 진실하기를 염원한다. 그는 다음 세대가 유능하며 임기응변에 원활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들이 원리원칙에 사는 사람이기를 더 많이 원하고 있다. 그는 다음 세대가 국가 사회에 유용한 인물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세계적으로 유용한 인물이기를 더욱 원하고 있다. 

   교육자는 간혹 실제에 우원(迂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땅의 사람이기보다도 땅이 하늘로 불붙는 연소점을 노리는 인간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자의 사명은 노후에도 평생 계속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