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우리 주위의 모든 외형적이고 물리적인 변화는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10년 동안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는 확실히 혁명적인 템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성과와 영향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러나 이 변화는 과연 우리에게 낙관적인 사회 발전이라고만 생각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 하면 외형적인 성장이나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변화들이 커 가는 것 못지않게 더 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남으로써 사람들이 받는 피해와 불의는 불치의 병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불신사회’니, ‘인간 부재 사회’니, ‘병든 사회’니 하는 말들이나, 혹은 ‘규격품화의 문명’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가 오늘의 병든 사회의 증상에 갖가지 별명을 붙인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날그날의 생을 영위하기 위해서 싸우고 움직이며 살다보면, 눈앞의 이익과 자기 목표를 달성한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것이 아닌데’라는 외마디 소리를 마음속으로 외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마음의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엇인가 우울하고 슬픈 어둠의 그림자 속에서 고독한 사회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사회에서 보편화하여 가는 것 같다. 

   인간은 만능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리고 개인의 결점이나 사회의 결함이나 민족의 단점을 자인하면서 이것을 메워 나가는 계속적인 과정이 곧 인간의 역사이며 사회의 역사적 발전상이라 하겠다.  

   우리 눈앞에 부닥친 가장 긴급한 문제는 어떻게 불신 사회를 서로 믿는 사회로 만드느냐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믿는 사회는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니다. 믿을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전에, 내가 우선 누구에게나 믿을 수 있는 대상이 되지 않아서는 안된다. 그렇지 못하면 자기 생의 의의와 보람이 없는 그림자 같은 허깨비 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자각하지 않고서는 안 될 것이다.

   남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남을 위한 지상 명령이기 전에, 자기 자신의 참된 생명을 얻게 하는 동시에 인간의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원천도 되는 것이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게 된다는 말이 곡 성경 속의 진리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것도 근본 바탕에서 얼마만큼 믿을 만한 국민의 수가 많은가에 달려있고 얼마만큼 믿음으로 얽혀진 사회이며 국가인가에 달려 있다 하겠다. 서로 믿는 사회에서만 이해를 초월한 인정과 사랑이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되며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하고, 정직하게 하고, 겸손하게 하며, 남을 위해 봉사하는 데 인색치 않도록 한다. 

   믿는 사회는 허식과 허영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치란 하나의 천덕스러운 자기기만이며 사회의 좀벌레 같은 것이다. 병들지 않은 건전한 사회란 신의의 인간이 어느 구석이고 살아 있어 천하가 무너져도 신과 의를 저버리지 않고 자기 생에 충실한 사람이 많은 사회이다. 

   자기 생에 충실한 사람이란 자기 눈앞에 언제나 자기 생의 유한성을 자각하여 자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인간으로서의 체통과 위엄을 지키겠다는 결단이 자기 언행 하나하나에 집결되어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선 불신 속에서 신의의 사회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